의사는 '매드맨', 기자는 '터프맨', 대통령은 '개그맨?' 연초
한 직업연구팀이 내놓은 영화속에 비친 직업의 모습들인데 '대통령은
개그맨'이란 비유는 우리에겐 맞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비친 미국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거나 납치대상자로
묘사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본연의 임무보다 에피소드 메이커로 더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많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그 짓을 하고도 '부적절한 관계'라고
했으니 개그맨으로 손색이 없다. 과자를 먹다가 식도에 걸리는 바람에
잠시 졸도, 왼쪽 뺨에 달러화 지폐 반쪽 크기의 피멍이 든 채 TV에
나온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모습 또한 영락없는 개그맨이었다.
클린턴과 부시는 동갑이기도 하지만 건강미가 넘쳐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탈출에 성공할 것 같은 든든한 체구에다 악동 같은 미소를 지녔다.

그런데 엊그제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연두기자회견장의 김대중 대통령
모습은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발음도 안 되는 데다
모습마저 의기소침해 보여 안쓰러웠다. 연두회견이란 국가 통치권자가
한 해 국정운영을 밝히는 자리인 만큼 내용도 중요하지만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활력에 넘쳐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언론개혁'을 외치며 기세등등하던
대통령의 표정이 어둡고 피곤해 보여 용기와 희망보다는 건강을 염려하는
문의가 적지 않았다. 기자들과 일문일답하며 한 차례 곁들인 농담도
요즘 유행하는 '허무개그'처럼 썰렁했다. 개각에 대해 묻자 "(총리와
각료들을) 앞에 놓고 말하라 하면 나오던 말도 바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
"게이트 때문에 정신 못차리고…." 표정이 말과 어울리지를 않았다.

우리 정서에 개그맨 같은 대통령도 맞지 않지만 의기소침한 대통령의
모습 또한 국민을 맥빠지게 한다. 아무리 레임덕이 빨리 왔다고 해도
취임 초 '국민과의 대화'에서 보인 패기와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고
기력없이 국정을 운위하니 국민들만 답답할 뿐이다. 그럴 바에는 라디오
연설이나 담화문으로 대신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성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