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옥새를 재현하고 있는 민홍규(47)씨는 지난 10일 밤 이천시
설성면 장천 4리 자신의 집 마당 한켠에 마련된 가마에 불을 올렸다.
작년 봄 만들어 건조시킨 거푸집을 도자기처럼 구워 틀을 만들기
위해서다. 틀에 금·동 등을 녹여 섞은 1500℃ 가까운 쇳물을 부어야
하기 때문에 거푸집도 두 번 구워 같은 온도까지 올린다. 민씨는 "온도
차이가 나거나 거푸집이 덜 마른 상태에다 쇳물을 부으면 폭발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살 때 친구들이 그가 들고
있던 뜨거운 거푸집에 물총을 쏘는 바람에 거푸집이 터져 큰 화상을
입었다.
임금이 쓰는 도장인 옥새를 만들기 위해선 일반 도장과는 달리 한 해가
걸리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우선 봄이 오면 거푸집의 재료가 되는 흙을
인근 청미천 냇가에서 캐내 불순물을 없애고 볏짚, 조개 껍질 가루 등과
섞어 반죽을 해서 3개월 쯤 묵혀둔다. 여름이 오면 옥새의 글자와 손잡이
형태를 도안하고 밀랍으로 옥새의 모형을 만든다. 옥새 모형에 흙반죽을
붙이면 거푸집이 완성된다. 거푸집은 장마가 끝나고 말리기 시작, 꼬박
4∼5개월을 그늘에 둔다. 겨울이 오면 거푸집을 구워 밀랍을 녹여 낸
자리에 쇳물을 부어 완성시킨다. 민씨는 "뜨거운 옥새를 모래에 묻어
이틀을 식히고, 잿물에 넣고 끓여 불순물을 제거한 후, 금가루를 입혀
광을 내면 일년 간의 과정이 끝난다"고 설명했다. 올 해 그가 만들어
내는 옥새 재현품은 모두 6과. 97년부터 작년까지 20과를 만들어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
민씨가 옥새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6살 때 할아버지의 친구인 정기호
선생을 만나면서 부터. 정씨는 조선시대 마지막 옥새장인인 황소산
선생의 제자였지만 "임금이 없는 나라에 옥새가 무슨 소용이냐"며 89년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개인 인장만 만들었다. 민씨도 옥새 만들기를
주저했지만, 90년 큰 수술을 받고 나서는 옥새장인의 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재현에 나섰다. 규장각 등을 찾아 문헌과 자료를
모으고 93년엔 옥새를 만들기에 적당한 흙이 나오는 이천으로 집도
옮겼다. 작업 장면을 사진과 그림으로 남기고, 작업 방법도 400쪽에
이르는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민씨는 "옥새만 만들어서는 생계가
어렵지만, 우리 것을 재현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씨는 98년부터 집 주변에 사는 설성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자 공부도
시키고 있다. 매주 금·토요일 50∼60명의 아이들이 민씨 집에 모여
한자도 배운다. 민씨가 옥새를 만들기 위해 연마했던 한자 실력을 전수해
주기 위해서다.
앞으로 목표는 규장각 문서인 '보인부신총수'에 기록된 50여 과의
옥새를 모두 재현하는 것. 또 올 해부터 옥새의 문양을 도자기에 새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씨는 "옥새에 새기는 글자 모양을 디자인용으로
개발, 한국 문화의 한 흐름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031)643-2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