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貨 성공에 미래 건 유럽 ‘빅3’지도자 ##
유럽 연합(EU)의 새해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화폐 통합의 실험과 함께
밝아졌다. EU의 3대 강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유로화를 토대로 유럽 전체의 미래를 강조했다.
◆ 유로화 통용 선언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유로화는
유럽의 승리다. 분열과 전쟁, 시행착오의 한 세기 끝에 우리의 대륙은
평화와 단결, 안정 속에서 마침내 제 정체성과 힘을 확인했다"며
"이것은 모든 프랑스인들의 성공이고, 그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라크는 유로화 창설의 주역인 프랑스가 장차 유럽
통합의 주역임을 재천명함으로써, 향후 EU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언적으로 선점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eder) 독일 총리는 "유로화가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독일이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로화 창설에 적극 참여한 것은, 유럽
경제의 견인차 역할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의 차원에서 정치적 위상도
높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재환기시킨 것이다.
영국은 유로화 사용 12개국인 '유로랜드'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니 블레어(Tony Blair) 총리는 유로화 가입을 위한 국민 여론 확보를
올해 최대의 현안으로 삼고 있다. 블레어는 대륙의 유로화 진입이 성공을
거두자 "물론 유로화는 현실이므로, 우리가 그것에서 멀리 도망가거나,
머리를 모래 속에 쳐박으면서 마치 그게 없다는 듯이 구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짓"이라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블레어는
올해 가을쯤 유로화 가입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3국의 국내 정치 비중 강화
시라크는 올해 4월말~5월초 대통령 선거 출마를 앞두고, 정적인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총리의 사회당 정부를 우회적으로 때리는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다. 그가 신년사에서 "유로화가 약속하는 대로
유로화 덕분에 우리의 국제적 지위가 개선되려면, 우리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경제적·국가적 대개혁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한 대(對)국민 호소는 조스팽 정부의 개혁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강한 국가와 존경 받는
정부가 필요하다"며 반(反)조스팽 세력의 불만을 대변했다.
현상태에서 두 사람만이 대선에서 맞붙는다면, 시라크(52%)가
조스팽(48%)을 누를 것이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시라크는
9·11 미국 테러 공격 이후 국제정치 무대에서 국익과 명분을 모두
챙기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조스팽은 치안 불안과 실업률 증가를 초래했고, 경찰과
의사, 교사 등 각 집단의 연쇄 시위·파업에 끌려 다니는 인상을 줘
권위가 떨어졌다.
하지만 시라크는 파리 시장 시절 이후 줄줄이 불법 정치 자금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도덕적 약점을 늘 갖고 있다. 또한 18~24세를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는 조스팽이 28%의 지지율로 시라크(25%)보다 앞서 있는
실정이다. 시라크와 조스팽의 대결은 부시와 고어의 미국 선거처럼
막판까지 예측불허의 상황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도 올해 9월 총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도전해야 한다.
독일은 지금 경제 불황에 직면해있다. 지난해 경제가 0.7% 성장한 데
그쳐 EU 국가 중 최하위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기업활동과 소비 심리가
모두 위축된 가운데 실업자가 400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경제 위기
속에도 슈뢰더의 정치적 인기는 여전히 높다. 여론 조사에서 61%가
슈뢰더의 재집권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국민들은 슈뢰더가 9·11 이후
국제 문제에서 독일의 비중을 높였다고 평가하면서, 독일군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키로 한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대신하는 순방 외교를 통해 반(反)테러 국제연합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에는 국내 문제에 치중해야 할 처지다. 국가
의료체제 개혁을 비롯해서 대중교통과 교육 현장에서의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노동당 내부와 지지층에서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치 평론가 재키 애슐리(Jackie Ashley)는 옵서버지 6일자에 기고한
'토니야, 돌아오렴, 조국이 너를 찾는다'라는 글을 통해 "당신은 해외
여행을 유럽 연합(EU)와 관련된 일에 국한해야 한다"며 "역사는 집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시라크-슈뢰더-블레어는…
프랑스·독일·영국 세나라 정상들은 대언론 관계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다.
시라크(70) 프랑스 대통령은 친딸 클로드의 말에 늘 귀 기울인다.
광고회사 출신의 클로드가 엘리제궁의 정식 공보담당관으로서 아버지의
이미지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시라크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클로드와 함께 3주일에 한번씩 비밀리에 뉴욕으로 날아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공보자문관 등 정치 이미지 전문가들로부터 훈련을 받았다는
설이 최근 나돌고 있다.
영국 블레어(49) 총리는 부인 쉐리 여사와의 사이에 3남1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다. 지난해 여름 부부가 멕시코 방문 직후 현지에서
곧바로 휴가를 즐길 때, 자녀들은 따로 단체 할인권으로 구입한 여객기
일반좌석표로 멕시코에 합류한 것이 화제가 됐다. 종종 가족을 언론
플레이에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슈뢰더(56) 독일 총리는 나치군 병사로 전사한 부친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편모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란 고학생 출신이다. 그는
도매상점 견습 점원 시절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명문 괴팅겐 대학
법학과에 입학, 변호사가 된 뒤 정치에 입문했다. 준수한 외모에 화술이
좋아 미디어를 통한 정치 시대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 파리=박해현특파원 hh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