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모임이 있어 시내에 나가던 길이었다. 시장 어귀에 어린 남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힐끔힐끔 큰 길을 내다보는 것으로 봐서 택시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무거운 짐꾸러미도 서너개 있었다. 이윽고 겨우
택시를 잡았다. 누나가 큰 짐을 들고 먼저 타고 동생이 뒤따라 타려다가
그만 짐꾸러미가 풀렸는지 시간이 지체되었다. 먼저 탄 누나가 다시
내리면서 화난 듯 큰소리로 동생을 구박했다. 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던
운전사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한 순간 택시는 이내 떠나버렸다.
먼 발치서 걸어오며 바라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아마 누나의 말투로 봐서
두어번 그런 식으로 택시를 놓친 모양이었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택시의
생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운전사가 직접 내려서 손님을 맞이하고 짐까지
챙겨주는 공항의 모범택시 운전사를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얼굴이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남매를 나몰라라 팽개친 채 횡하니 떠나가던
그 택시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월드컵은 국경없는 문화외교다. 단순한 축구 축제만은 아니다. 우리끼리
기본이 없으면 의식의 수준은 이내 그 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
노인이나 아이들게 친철한 문화는 어디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기본을
지키는 양심들은 그래서 월드컵 성공의 기반이다.
( 이용호 35·회사원·경남 사천시 선구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