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한강 나루나 시장마다 물화를 거간하는 객주가 있었고, 객주는 그
거간을 위해 정보를 탐지하는 귀벌이꾼을 거느리고 있었다. 남이 하는
말을 귀로 몰래 엿듣고 그것을 객주에게 팔아 먹고 산다하여
귀벌이꾼ㅡ상말로는 거간부랄이라 했다. 아마도 사고파는 사람 사이를
정보를 가지고 좌충우돌시킨다 해서 얻은 이름일 것이다. 객주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정보는 한양 청계천변 다방골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윗다방골 아랫다방골로 나뉘어 넉살 좋은 다모들이 차를 끓여
팔았는데, 그 차 나르는 심부름을 하는 중노미들이 특정 객주와 연계된
귀벌이꾼 노릇을 했다. 왜냐면 한양 물화의 거래는 거의 이 다방골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말 종로 육의전에서 가장 돈 많은 상인으로는
상쾌를 드는데, 교사동 안동 김씨 가문에서 고지기를 해서뿐
아니라 유능한 귀벌이꾼을 대거 거느려 거래 정보를 가장 많이 집산시킨
때문이었다.

귀벌이꾼은 장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느 마을에도 남의 말 엿듣고
이를 교묘하게 악용하여 먹고사는 불성실한 사람이 없지 않았다.
흥부전에 꾀쇠아비가 등장하는데 바로 전형적인 한국 마을의
귀벌이꾼이다. 가난한 흥부가 굶다 못해 고을 돈 많은 김부자 대신
관영에 가 매를 대신 맞는 매품을 받기로 약정을 한다. 한 대에 한 푼씩
30대값 30푼을 받기로 하고 웃돈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이방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 동네 꾀쇠아비가 알면 그가 먼저 가로채어 갈 테니 매품
팔았다는 소문내지 마시오」한다.

그 웃돈으로 쌀을 사다가 굶은 자식들 포식시키는 것을 꾀쇠아비
지나가다가 엿듣는다. 결과적으로 흥부가 매품을 못팔고 마는데, 흥부가
매맞으러 갔을 때 꾀쇠아비가 가로채어 먼저 맞고 갔기 때문이라는
이본이 있다. 남의 하는 이야기 엿듣는 것은 서로를 믿고 친화를
지상으로 하는 전통사회에서 악덕 중의 악이다. 그래선지 자치규약인
향약에서 상중하벌 중 상지중벌로 엄벌했다. 지금 도·감청 공포가
확산돼 민간인뿐 아니라 검찰·경찰 간부도 그 공포권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보도가 있었다. 예부터 그러했지만 민심의 흉악도를 가늠하게
하는 꾀쇠아비 증후군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