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역사에서 30년간 집권했던 여장부로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와
빅토리아 여왕, 헝가리의 말리아 테레사, 러시아의 에카텔리나, 스페인의
이사벨라2세, 그리고 1980년에 죽은 네덜란드의 코리아나 여왕 등 무려
12명이나 된다. 아프리카 북부의 하베 왕조는 17대를 여왕이 지배했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 여왕은 희귀한 편이다. 그 긴 중국 역사에서 오로지
한 여인 무측천이 여왕에 오르고 있을 뿐이다. 당고종의
후궁으로 들어 앉은 무측천은 황후와 빈을 무고로 죽여 사랑을 독점하고,
고종이 죽은 후에 제위에 올라 고명신들을 모조리 죽였고, 세자도 차례로
죽이거나 갈아치우길 4명이나 했던 독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진평왕이 아들 없이 돌아가자 중신들의
화백회의에서 왕녀를 임금으로 추대한 것이 여왕의 최초로, 바로
27대 선덕여왕이다. 여왕은 결혼하지 못하게 돼 있었던 때문인지
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인 키가 7척이요 기골이 장대한 진덕여왕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시켰다. 신라가 망해갈 무렵 헌강왕이 아들 없이 죽자
누이동생인 진성여왕이 51대로 등극했는데, 정치보다 중신인
위홍과의 사랑을 보다 소중히 여겨 국정을 도탄에 빠트렸던
여왕이다.
한국사에서 여왕은 신라 한 시대에 국한, 셋에 불과한데, 일본에서는
극히 근세까지 8명이나 탄생시키고 있다. 왕의 둘째딸로 태어나 후대의
왕비가 되었다가 왕과 세자가 죽으면서 추대된 33대의 스이코
여왕은 17조의 헌법을 발포하는 등 30여년 동안 군림했다. 여왕 탄생을
두고, 예부터 일본 왕계의 시조신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가
여자라는 것으로 합리화하는 여론과, 일본 고대의 여걸이요 정치가인
진구우도 60년간 집권하면서 여왕 칭호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반대하는 여론이 맞붙어왔다.
왕비로서 왕이 죽은 다음에 여왕으로 추대된 경우(황극왕·지통왕)와,
왕이 죽자 왕모로서 여왕으로 추대된 경우(천명왕), 그리고 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녀로서 여왕에 추대된 경우(효겸왕·명정왕·후앵정왕)
등이 있다. 지금 일본 왕세자가 어렵게 출산을 했는데 딸인지라 앞으로
아들을 못 낳을 경우를 상정하고 여왕추대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어
여왕사를 더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