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평생을 지배한 것은 바로 「권위주의」라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궁정 권위주의, 박정희의 집정관적 권위주의,
그리고 YS·DJ의 문민 권위주의…. 도대체 이 권위주의의 족쇄에서
우리가 풀려날 길은 영 없다는 것인가? 지금 여·야 양쪽에는 이미 차기
대선주자들이 여기저기 나와있다. 더군다나 차기는 이른바 3김정치가 그
시대적 소임을 마감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DJ 이후' 또는 '3김 이후'에 우리는 과연 어떤 종류의
새로운 리더십을 주문해야 할 것인가? 우선 바라고 싶은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청산이다. YS·DJ 시대는 물론 민주화시대였다. 그러나
'대통령=제왕'이라는 점에서만은 지난 10년이 대체 무슨
민주화시대였다는 것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 옛날 조선왕조 때의
임금들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들만큼 '짐이 곧 국가니라'를
그토록 견제없이 만끽할 수 있었을까? 차기에는 그래서 정보기관과
검찰·국세청을 대통령의 「사유재산 목록」에서 확실하게 해제시킬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내가 다음 번이다'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점을 분명하게 공약으로 내걸어야 하겠다. 권위주의 시절이건
민주화 시절이건 정말 지긋지긋했던 것이 「칼자루 기관」들의
사병화와 사물화였기에 하는 말이다.

차기에는 또한 「룰(rule)에 의한 지배」를 열어야 한다. 메시아적
대통령의 자의성도 아니고 군중집단의 떼쓰기도 아닌, 정당하고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시대를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원맨쇼 대통령과 대중동원
정치가 야합하는 방식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지배형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차기들'은 먼저 오늘의 룰들이 과연 공정한지를 점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으면 그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개정된 룰들은 대통령직을 걸고 가차없이 적용할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 이제는 더이상 카리스마와 중우가 이 나라를 제멋대로
주무르거나 뒤흔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차기는 아울러 정치 대통령, 정쟁 대통령, 싸움 대통령 시대를 마감하고
명실상부한 경영 대통령, CEO대통령 시대를 열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1년여를 남겨두고서야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당
총재직을 사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기'들은 취임 첫날부터
'여의도 정쟁'과는 결별하고 '국제정치 국제경제 속의 한반도
경영전략'에 전념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심의 표적은
민생이고 경제고 교육이어야지, '의원 꿔주기'나 '미운X 계좌추적'
따위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정쟁은 자율성 갖춘 당에, 웬만한
업무는 책임진 장관들에게, 그리고 전문분야 행정은 독립적인 관료제에
맡기고 대통령은 그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방식-아마도 이런 것이 'DJ 이후'의 우리 체제의 그림이어야 하지
않을까?

차기는 나아가 중도 대통령, 중용 대통령, 보편성의
대통령 시대가 됐으면 한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 후보들은 곧잘 '나는
중도통합이라며' 이쪽에 가선 이쪽편, 저쪽에 가선 저쪽편인 양
시늉한다. 그러다가 일단 대통령이 된 다음엔 한쪽으로 치우친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선진국에선 재야시절에는 당파성을 강하게 풍기다가도
집권하고 나면 보수든 진보든 모두 중도로 다가간다. 대통령이나 총리는
한 당파, 한 계열만의 수장이 아니라 모든 계열들 공동의
대리자임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계속 한쪽만의 전사인 양 다른 쪽들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다가는
나라꼴이 갈기갈기 찢겨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그래서
중도의 처방으로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한발 후퇴'를 설득해내는
기술자라야 할 것이다.

군부 권위주의 30년, 민간 권위주의 10년이면 「권위」에 관한 한 이제
우리도 겪을 만큼 겪은 셈이다. 지난 세월의 반복 아닌 그 극복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 논설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