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들의 안개 이미지는 별 볼일 없다.시인 브라우닝은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목구멍에 낀 안개로 표현했다. 소설가 디킨스는 산허리에
감긴 안개를 쉴 곳을 찾지 못해 헤매는 악령의 배회로 비유했다. 그
앞에서 속인으로서의 자신이 콩알처럼 작아졌다는 송강 정철과 비겨봄
직하다. 10명의 임금이 갈리는152년을 살았던 영국의 장수노인 올드파를
죽게한 것은 런던의 궁전에 초대받아 있는 동안의 그 유명한 안개가
원흉이었다. 공포의 대상인 안개 이미지가 좋을 턱이 없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구름을 타고 주유천하하는데 내려다보이는
지상에 군데군데 안개낀 것을 보고 그 지역에 임금이 표독하거나 백성의
강상이 무너졌거나 관리가 탐욕하거나 여인들이 한을 품고 있음을
가늠했다. 곧 중국에서도 안개를 둔 부정적인 견해가 없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데 밝음보다 으스름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안개는 품이 꼭
들어맞는다. 한국의 500대 대중가요의 어휘빈도 조사에서 「안개」가
10위 안에 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수묵화에서 취무라는 화법이
있는데 먹을 입으로 뿜어 화면에 안개효과를 내는 화법으로 존재공간과
초월공간의 정서적 다리를 그로써 표현했다. 먹의 농담을
일곱가름(박·담·천·차·중·심·농)하여 으스름을 다양화했는데 이를
휘묵 또는 무묵이라 했으니 미학 속의 안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제주도의 무속신화에 풍신인 바람운이 구름의 여신인 고산국과
결혼해 사는데 처제인 안개의 신 지산국의 미모에 홀려 사랑의 도주를
한다. 곧 한라산의 기후는 이 세 신의 삼각관계로 파악했는데 미모의
여인으로 안개를 설정한 발상이 주의를 끈다. 신라 충신
박제상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의 아우를 탈출시키는데
추적하지 못하도록 안개가 보호했다. 한말에 오페르트는 통상을 거부당한
데 대한 보복으로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소를 파헤치자 난데없이
짙은 안개가 이들을 감싸 파다 말고 도주케한 것 등 안개는
호국무이기도 했다. 연일 짙은 안개로 여객기가 못 뜨고
교통사고가 빈발했으며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 문턱을 닳게 했다 하여
안개 이미지마저 서구화함을 절감케하는 작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