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호스트 바 같은 데라도 가볼 걸 그랬나 봐요.』
12월1~2일 인천종합문예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사슴아,
사슴아-목종비곡」의 주연 이경미(26)씨. 그녀는 몇 달 전부터 남자에
대한 연구를 하느라 머리 속이 복잡하다.
고려의 7대 왕으로, 18세에 왕위에 올라 관리들의 봉급 제도인 전시과를
개정하는 등 업적을 쌓았지만 궁중의 권력 다툼에 밀려 12년만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 목종이 바로 그녀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특히 목종은 자신의 뜻대로 정사를 펼 수 없게 되면서 점차
남색에 빠졌고, 이 작품에 그 연기도 들어있어 그녀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극단 생활 7년 동안 남자 역은 안 해봤어요. 목소리, 걸음걸이,
왕으로서의 위엄 같은 것을「마마 보이」기질이 있었다는 목종의 독특한
캐릭터에 맞춰 소화해야 할텐데…』
그녀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녀에게 이 역을 맡긴 연출진들은 연기력이
뛰어나고, 큰 키에 눈빛에는 카리스마가 있어 다소 중성적인 이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고 했다.
서인천고교 출신으로 95년부터 극단「10년 후」에서 활동중인 그녀는
중학교 때「아가씨와 건달들」을 본 뒤『참 멋있다』는 생각에
연기자로서의 길을 꿈꾸게 됐다.
배고프기 십상인 연극인 생활에 대해 주위의 반대도 많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그녀 자신도 나이때문인지 아직은 그 문제로
크게 고심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역할 소화가 잘 안될 때야말로 정말 고민하게 되죠.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또 개성이 강한 사람들끼리 모여 작품을 하다 보면 사소한 일
하나 하나에도 부딪치게 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일이예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무대에 선다는 화려함보다 한 작품을 준비하면서 힘든
과정을 다 넘기고 여럿이 함께 공연을 한다는 그 자체를 그냥 좋아하게
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은 주로 움직임이 많은 연극을 했어요. 남자 상대역들이 저를
들거나 업는 역을 할 때 무거워 할까 봐 밥을 굶은 적도 많았죠. 하지만
요즘은「남자가 그렇게 힘이 없냐」고 타박할 만큼 뻔뻔해졌어요.』
공연이 끝나 허탈해 질 때 주로 대학로를 찾아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그녀는『다른 무엇보다 그냥 사람이 좋아서 연극을 한다는 마음이 들
때까지 해보라』는 한 친구의 말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사슴아 사슴아」는 권력 구조에 의해 비극을 맞은 목종이 역사와
민중을 향해 던지는 항변을 통해 오늘날의 정치·사회상을 비춰보려는
것이 연출 의도로, 지역 극단 작품으로는 흔치 않게 4500만원이라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다. 매일 오후3시-6시 공연.☎507-2010
( 최재용기자 jychoi@chosun.co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