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가 많아 부담스러워 쳐다보지도 않던 신문을 거의 매일 읽게 된
것은 중학교 때부터 빼놓지 않고 읽어온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
덕분이었다. 커다란 안경이 인상적인 캐리커쳐와 테두리를 두 번 두른
박스가 독특했던 이 코너를 읽을 때마다 나는 시공을 넘나드는
이규태님의 해박함에 반하고, 나 자신의 지식이 늘어나는 것에 행복해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조선일보 기획물을 꼽아보라면 섹션으로
제작된 '2029'나 최근 다시 시작한 '2030'이다. 신문 보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업무와 동떨어진 기사에 눈길이 많이 가게 되고, 같은
또래들의 사는 얘기라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뭐라 콕 집어 표현하기 어려웠던 주변 친구들의 잡다한 얘기가 하나의
트랜드로 묶여 사회 심리학적인 분석까지 곁들여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맞아 맞아'라는 감탄을 연발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너무 앞서가는 동년배들의 기사를 보면서 '어디서 이런 톡톡 튀는
사람들을 찾아냈을까' 하는 신기함마저 들었다.

홍보라는 직업의 장점 중 하나는 업무시간에 신문을 펼쳐놓고 몇 시간을
보더라도 상사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경제지, 종합지, 스포츠지 등 일간지만 해도 20개가 넘다 보니
하루치만 꼼꼼히 본다 해도 반나절을 넘길 수밖에 없다.

매일 발행되는 20 여 개의 신문 중에서도 다른 신문과 구별해 주는
독특한 색깔이 신문마다의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일보가 가진
독특한 색깔이 발견되는 대목은 뭐니뭐니 해도 기획연재다. 가끔은 너무
딱딱해서 정독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타 언론사에 비해 사회의
흐름을 재빠르게 짚어내는 '센스'를 느낄 수 있다.

'달라지는 장묘 문화'나 '기부문화를 만들자', '세계는 자원전쟁
중', '환경은 경제다' 등 다분히 교화적이라 재미는 없지만 반드시
지적이 필요한 기획연재와 철새처럼 이직하는 샐러리맨들, 본업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two job족', 술이 사라진 회식문화 등 달라져 가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보여준 '샐러리맨 신풍속도', 응석받이로 자라 부모
품속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청년 백수와 경기침체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 실업자에 대해 다룬 '낭비되는 젊음- 청년 백수들'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기러기 아빠들의 애환을 다룬 '신별거 가족시대' 등은
신문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스포츠지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샐러리맨들 사이에 '북창동
드림'을 만들었던 기획 연재기사 '번성하는 룸살롱' 은 너무
선정적이라 누가 볼까 숨어서 읽으면서도 얼굴이 붉어지던 기억이 있다.

판매부수 1위인 조선일보라고 해서 흉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지면에서 같은 기자 이름이 두 번 이상 바이라인에 오르거나 아예 한
지면 전체가 한 사람의 기자 이름으로 도배되는 경우가 타 신문사에 비해
많다. 한편으로는 인력 구조조정의 풍파가 조선일보도 비껴가진 못했구나
생각케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루에 두 꼭지 이상의 기사를 쓰면서
얼마나 심층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을까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성인력에 대한 보수성도 지적하고 싶다. 타 신문사의 여기자 수를
비교한 정확한 통계치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여성을 배려한 수많은
기사와 기업들의 인색한 여성 고용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는 다르게
조선일보는 성별이 '여'로 구분되는 기자를 유독 만나기 힘들다.

언론홍보 업무를 하면서 그 동안 만났던 조선일보 기자들은 이제 나의
연차 수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손가락으로는 꼽을 수 없게 됐다. 내가
만났던 조선일보 기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정중함'이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무례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독특한 넥타이와
캐주얼한 양복이 인상적인 의학전문기자, 나와 동갑 나이인데도 랩과
최신 댄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경제과학부 전 출입기자, 그리고 홍보실
직원들 편하게 해준다며 직원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는 바람에 상사들에게
'출입기자 관리 허술'에 대해 지적 받게 한 현 출입기자, 그리고
열거하진 못했지만 일로든 개인적으로든 만났던 조선일보 기자들은
내로라 하는 엘리트들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한 태도로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 기자들은 대부분 상대의
나이를 불문하고 직급 뒤에 '님'자 까지 붙여 '○○주임님',
'○○대리님'이라고 호칭하기 때문에 가끔은 황송함까지 느껴진다.

요즘 일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일보를 구독한다」 하면 의식
없는 사람으로 소외되기도 한다. 조선일보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조선일보가 보수적 색채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판이 거세진다 하더라도 조선일보 본래의
색깔을 쉽게 바꾸지 말았으면 한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반대해서가 아니다.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가 존재해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소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조선일보를 주시하고 있는 눈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사건건 조선일보의 기사를 문제 삼는 안티
조선운동도 조선일보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을 일정
부분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가 언제나 옳고 바른 판단만
한다는 오만보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지면에 적극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함을 기대한다.

(㈜신세계 홍보실 대리)

■장혜진 대리는… 1970년 출생. 서울 토박이. 숙명 여중·고,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93년 11월 ㈜신세계 입사 직후부터 홍보실에서만
줄곧 근무. 1년 동안 사내보 담당을 거쳐 95년 1월부터 7년째 언론 홍보
업무를 맡고 있어 백화점 업계 '최고참' 여자 홍보 담당자. 취미는 명품
아이쇼핑과 스키. 98년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