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왼쪽)일본 총리가 8일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각의를 주재하고 있다.각의는 이날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지원하기위해 자위대 전함 3척을 파견키로 결정했다.


9일 오전 6시52분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 기지. 대형 자위대 함정
3척이 욱일승천기를 함미에 달고 차례로 항구를 떠났다. 2차대전 종전
이후 56년간 금지됐던 일본군의 전쟁 참여가 시작됐다.

'자위대 1진'이 출항한 사세보 부두에는 새벽 4시 무렵부터 대원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나온 가족들, 자위대 파견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과
노동조합원들, 언론사 취재팀이 가득 모였다. 갑판 위에 정렬한 병사들이
모자를 흔들고, 아이를 안고 멀어져가는 배 뒷전을 보며 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여인들의 모습 등, 여느 참전 장면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한
여성은 "조심하라는 말밖에 못했다. 아기가 열이 있는데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걱정했다. 반면 초로의 대원 아버지는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아들을 격려했다"고
했다.

이날 출항한 3척의 함정은 1차적으로는 '조사와 정보 수집'이
목적이다. 이달 하순쯤 예상되는 자위대 본진에 앞서 인도양 주변
항로의 안전 확인과 기항지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그러나 본진이
도착하는 즉시 합류해 미군 지원활동에 착수하기로 계획이 수립돼 있어
사실상 '파병 1진'에 해당한다.

일본 방위청은 미군이 미사일을 쏘고 전투기가 발착하는 수역에 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날 출항한 함정에는 미군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이 탑재돼 있어, 미군의 공격과
자위대 활동은 일체화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망했다.

관심이 됐던 최신형 이지스(Aegis) 구축함은 이번 1진에서는 빠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이직 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으나, 요미우리와 산케이 신문은 "어째서 이지스함을
파견하지 않느냐"는 사설을 이날 게재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야나이 ?지 전 주미대사도 "이지스함에 대한 미국의 기대는
크다"고 거들었다.

고이즈미 내각은 주변국과 일본내 반대파의 우려를, '국제사회
공헌'이라는 명분으로 물리치고 단시간에 이번 파병을 성사시켰다. 불과
두 달만에 여론을 설득하고 법률을 만들어 파병까지 이어졌다. 이런
민첩함은 '자위대 파병'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본의 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충분한 연구
없이 이뤄진, 위헌 가능성 있는 파병"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 대부분은 파병에 찬성하고 고이즈미 내각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비슷한 시각(현지시각 8일 오후) 워싱턴에서
가토 료조 신임 주미 일본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으며 "일본
정부와 국민들로부터의 우정과 지원으로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고
있으며, 매우 감사한다. 미·일은 현재 진정으로 최상의 관계에 있다"고
흡족해 했다.

일본 국내에서나 국제 사회에서는 이번 파병을 두고 '군국주의
부활'이나 '군사대국'으로 직접 연결짓는 우려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사히나 도쿄신문 등 진보적인 일본 언론들도 자위대 파견 자체에
대해 전면적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등
대표적인 주변국들 역시 일본의 파병을 '대세'로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돼버렸다. 미국 테러사건이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무리없이
추진되게 만들어준 셈이다.

■파병 '함대1진'/ 호위-구축-보급함 등 3척 보내

9일 출항한 3척의 자위대 함정 가운데 2척의 전투함은 이지스(Aegis)함이
아니니까 '별로'인 함정일까?

한국 해군이 보유한 최고 구축함은 '광개토대왕함'이다. 1996년 진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그 위용을 보면서 우리 역량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날 출항한 자위대함들은 그런 광개토대왕함
이상이다.

'104'라는 숫자를 새긴 4550t(기준배수량)급 '기리사메(きりさめ)'는
99년 3월 취역한 최신형 호위함. 레이더를 피하는 스텔스 기능에 동급의
다른 함정은 갖추지 못한 이지스 기능도 갖추고 있어, '미니
이지스함'이라고 불리운다. 길이 151m에 폭 17.4m, SH-60헬리콥터 1대를
갖추고 있다. 잠수함 공격 능력은 물론 함대함(함대함), 함대공
미사일을 탑재한 최신형이다. "길이 1백35.4m, 폭 14.2m의 광개토함은
물론, 한국이 건조중인 차세대 구축함(KDX-2)보다도 일부 나은 성능을
갖고 있다"고 한국 군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144'라는 숫자를 달고 함께 출항한 헬리콥터 탑재 구축함
'구라마(くらま)'는 취역 당시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주변국을 긴장시켰던 '시라네급' 함정이다. 기준배수량(5200t) 등
크기만으로는 기리사메보다 대형이다. 길이 159m에 폭 17.5m, 3대의
대잠수함 헬리콥터를 탑재하고 있으며, 360명의 승조원이 타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일본 함대 기함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일본에서는 '구형'이라고 신형 함정으로의 교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우리 해군에 온다면 '주력함'이 되고도 남을 수준이다.

함께 출항한 보급함 하마나(はまな·8000t) 역시 연료 등의 보급 상황을
컴퓨터로 완전 자동 제어하는 최첨단 함정이다.

( 동경=권대열특파원 dykw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