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물거래소가 설립된 후 부산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툭하면
머리에 붉은띠를 두르고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 머리띠를 두르고 나섰을 때는 점잖은 편이었다. 증권과 선물거래를
분리해 두 시장을 전문화시키기 위해 95년 제정된 선물거래법은, 모든
선물거래를 선물거래소에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선물거래소가 생기기 전 증권거래소에서 이뤄지던 주가지수(KOSPI200)
선물거래는 곧 선물거래소로 이전되는 게 당연했다. 한데 증권거래소가
주가지수 선물거래를 계속 고집하자, 「원칙에 충실하자」며 『주가지수
선물이관을 서둘러 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해댄 것이다.
훨씬 강도가 높았던 두 번째 「투쟁」은 작년 1월에 있었다.
『주가지수 선물을 「빨리」 넘겨달라』는 요구에, 당시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아예 「주가지수 선물 이관 불가」로 화답했다. 이때부터
근 1년여 동안 「이관」을 둘러싼 논란은 과천 정부청사와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오가며 뜨거운 공방을 벌였고, 12월 개정된 선물거래법
시행령에 「2004년 주가지수 선물 이관」을 못박으면서 일단락됐다.
이때만 해도 시민단체들은 다시는 머리띠 두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한데 웬걸, 지난 5월에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뜬금없이
「증권·선물 통합」안을 들고나왔다. 이 위원장은 『자본시장이
증권거래소와 코스닥, 선물시장으로 분리운영되는 데 따른 IT(정보통신)
중복투자의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3대시장 통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선물거래소는 만들어진 지 불과 두 해 만에 존폐위기의 운명에
처한 셈이다.
거래소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통합도 어려울 텐데 거기다 선물시장까지
함께 통합하겠다는 정부의 무모한 발상은 시민단체들이
다시한번「상경투쟁」을 벌이는 등 한 달여간의 혼란을 거쳐
「중장기 검토」로 막을 내렸다. 7월 부산을 방문한 진념 부총리는
정부가 부산선물거래소를 육성하기는커녕, 시도때도 없이
고사시키려 한다는 지역여론에 부담을 느껴서인지 『주식관련
선물의 증권거래소 추가상장은 절대 없다』고 확약까지 했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또 머리띠 두를 일이 생겼다. 재정경제부가
『내년 1월 28일부터 증권거래소에 삼성전자·한국전력 등 개별종목을
대상으로 한 선물·옵션 상품을 상장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홍콩거래소가 한국의 5개 상장종목을 대상으로 개별주식
선물·옵션상품을 상장하는 데 따른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내세웠다.
아울러 『선물거래법 시행령상 2004년부터 모든 선물거래가 선물거래소로
이관되는 만큼, 2003년까지는 증권거래소에서 주식관련 선물거래를 하는
데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2004년에는 모든
선물거래를 꼭 이관시킬 것』이라는 사족을 달았다.
불과 석달 전, 「IT 중복투자의 비효율성 제거」를 위해 시장통합 주장을
내놨다가 철회한 정부가, 1년 반이 지나면 폐기처분해야 할 전산시스템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150억원 정도 추산) 구축해 개별주식 선물·옵션
상품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좌장의 약속도 두 달
만에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요즘 68개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선물거래소가 문을 연 이래 네 번째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한국선물거래소의 부산 설립은 「서울 공화국」
「일극중심」의 기형화된 국토구조를 바꿔 『지방도
살려보자』는 국가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선물시장 개장 2년 반
동안 정부의 선물정책을 보면 조금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 김영철 사회부차장 yck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