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말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얼마 전 뉴욕 월 스트리트의
'블룸버그 통신'이 내보낸 몇 줄짜리 기사 때문에 한국 정부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
통신사가 '한국의 가용 외환보유액이 거의 고갈된 상태'라는
'기밀'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이 즉각 반박자료를 내는 등
수습에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블룸버그의 위용을 처음 실감하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 블룸버그 통신의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이번에 뉴욕 시장으로
선출됐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기업인의 정치권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화제를 모았지만 당선 가능성은 적다는 평이었다. 그런데 '9·11
테러사태'이후 피해복구와 경제재건이 초미의 과제로 등장하면서
블룸버그의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가 뉴욕 시민들에게 먹혀든
덕분이다.
매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평범한 샐러리맨 가정에서 태어난 블룸버그는
존스홉킨스 대학 전자공학과를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뒤 1966년 뉴욕의 살로먼브러더스에 입사했다. 주식중개인으로 활약하면서
능력을 발휘해 72년 파트너로 승진하고 주식과 정보부문을 총괄하는
책임자 자리에 올랐지만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탓에 81년 파트너들의
투표를 거쳐 전격 해고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퇴직금을 몽땅 털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창업해 금융정보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블룸버그의 성공비결은 단말기를
통해 주식과 채권의 시세뿐만 아니라 과거의 가격동향과 기업실적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함께 제공한 데 있다. 몇 주 전 가격을 알아보려면
과거 신문철을 뒤적거려야 했던 상황에서 블룸버그 방식은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덕분에 블룸버그 통신은 창립 20년 만에 전 세계 108개국에서 한 해
25억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뉴스업체로 성장했으며, 블룸버그 자신도
40억달러의 재산가로 성공했다. "뉴욕타임스에 긴 부음기사가 실리도록
하겠다(출세하겠다는 의미)"던 그의 목표는 이미 달성한 듯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가 또 한번 '블룸버그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