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비극적 풍경, 풍경에 깃든 들끓는 은유들, 그리고 삶과 죽음….

세번째 시집 '내가 밀어낸 물결'(세계사)을 낸 오정국(46)은
그 은유에 투항한다. "허깨비가 되어 벌판에 선 느낌"이지만, "삶의
얼룩, 거기 스민 죽음의 실뿌리"를 밝혀보고 싶다. "삶이 깊지 못해
쓸쓸하고 허망할지라도"(자서) 시인이 가야할 길이다.

'내가 밀어낸 물결, 또 내게로 온다…// 지난 밤에도 누군가 나를
다녀갔다 아버지인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
눈동자가 강물에 젖는다 지상의 괴로움 끝없이 물결치고, 내가 밀어낸
물결 또 내게로 온다'(표제시 부분)

도시를 떠나 자연을 헤맨 것은 위안을 얻고자 함이었건만, 그 자연은
시인의 짧은 생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었다. 이제 머리를 들고 먼산을
우러르며 시로 눈물을 닦는다.

'황금빛의 짧은 세상, 티끌세상/ 티끌먼지 뒤집어쓴/ 석양의 묘비들은/
몸을 떨며 울고// 해 떨어지기 전, 바다에 이르러/ 이 짧은 생애를
비추는/ 물결의/ 저 기나긴 입맞춤'('하구' 전문)

그는 헛된 묘비명을 꿈꾸는 문학적 안락사에 도취될 수 없다. 어차피
시의 길은 "보호받지 못하는 비보호 좌회전"이고, "시집을 읽으며 그
행간의 노여움으로 추위를 견뎌야 할 것"이다.

'…// 누가 저 길을 꿈꾸었던가/ 남몰래/ 숨겨놓은/ 정부에게
가는 길/ 눈먼 치정의/ 시의 길'('비보호좌회전' 부분).

(김광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