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는 구태를 벗어난 정치를 곧잘 발상했는데 그중 하나가 즉위
5년 되던 해에 사형제도를 없앨 것을 조정에서 의논하라고 하달한
일이다. 의논한 결과 불가함을 아뢰어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1459년의
일이고 보면 우리나라의 행형(行刑) 인권사상은 선진국이었다 할 수
있다. 사형 아닌 혹형의 폐지도 꾸준히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등을 몽둥이로 치는 태배형(笞背刑)을 두고 사람의 오장육부가 모두 등
가까이 모여 있음을 들어 폐지한 것을 비롯하여, 중종은 거적에 씌워
몽둥이로 난타하는 난장(亂杖)을, 영조는 뭉둥이로 정강이를 까는
압슬형(壓膝刑)과 다리의 위아래를 묶고 지렛대질을 하는 주뢰형(周牢刑),
벌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지져대는 낙형(烙刑)을 폐지했다.

서양에서는 러시아 피터 대제의 딸인 엘리자베타 여제가
사형을 폐지한 것이 처음이다. 그 후 이탈리아의 베카리아는 국가에
시민을 죽일 수 있는 권리까지 주어지지는 않았다는 계몽주의 학설로
사형의 부당을 주장했고, 이에 영향받은 독일 황제 요셉2세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사형을 폐지했다. 철학자 칸트는 베카리아의 학설에 반기를
들고 존치론을 주장했지만, 지금 유럽에서 벨기에와 그리스 이외에는
모두 사형을 폐지했고 유엔에서도 폐지조약을 1990년에 발효시키고 있다.

존치론은, 구약성서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듯이 범죄에는
응보가 있어야 도덕과 정의가 존립하고, 사형으로 위협함으로써
범죄억제력을 발휘하여 흉악범죄의 불안으로부터 국민을 영원히 보호하기
위함이며, 악의 격리를 위해 국민의 재산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 등을
든다. 폐지론은, 미국의 폐지주와 존폐주의 범죄발생을 비교해
보아도 큰 의미가 없음을 들어 폐지했다고 해서 범죄가 늘지는 않는다
한다. 또한 충동범행일 경우 사형을 생각할 리 없고, 계획적인 범행일 땐
잡히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며, 원한범죄일 경우엔 자신이 죽고 안
죽고는 염두에 없으며, 정치테러 같은 확신범에게는 사형이 오히려
훈장이 되니 범죄억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154명이 사형은
제도살인이라 하여 폐지법안을 제출하고 종교단체들에서 호응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난관은 흉악범에 대한 통념화된 증오의 벽을 어떻게
잠재우느냐에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