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에서 완승, 국회 원내 과반수(137석)에서 1석 모자라는 거대
의석을 확보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향후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까.
한나라당에는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국회를 사실상 장악한 만큼
국정의 책임 또한 분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까지 현재의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래서인지 26일 이 총재와 한나라당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이 총재는 현재 자신과 한나라당이 자만하고 오만에 빠졌다는 인식을
줄까 봐 크게 경계하는 듯 하다. 이 총재는 총재단회의에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도 잘못하면 국민이 여지없이 돌아서 버릴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몹시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부총재들에게
"앞으로 몸가짐을 조심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여야 영수회담을 먼저 제의하는 방안도 '자만'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 검토대상에서 제외했으나, 여권이 먼저 제의할 경우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의석의 과반을 채우는
문제도 민주당과 자민련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아래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인식은 대여관계와 국회 운영에도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민생과
경제회생을 위해 국민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줘야 한다"(이 총재),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당선자 선서를 하도록 돼 있었으나, 민주당
입장을 고려해 미뤘다"(이재오 원내총무)는 등의 언급이
그것이다. 올해 예산안 심의도 순조로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 총재가 유화론 일색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민주당이 곧 후보 경선 분위기로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 부상하면
지방선거, 대선 승패를 놓고 한 판 대결이 불가피해진다.
현재로선 이 총재 최대의 무기는 팽배한 반 DJ 민심이다. 이를 계속
붙들어두기 위해선 DJ 및 민주당과의 분명한 전선은 불가피하다. 이
총재는 당장 '이용호 게이트' 등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여야 유화국면은 여권에 의해 먼저 깨질지도 모른다. 여권이 이 총재
대세론 제압에 나서기 시작하면 전투는 곧바로 시작될 수도 있다.
이 총재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김영삼 전 대통령도
'범 보수 단일후보'라는 명분으로 과감하게 끌어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