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천달러 주면 카불에" 파키스탄 군인사 '사선의 유혹' ##
## CNN-NHK등 건물 옥상서 전황 중계…'전쟁'은 먼곳에… ##

아프간 전쟁 취재를 위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되는
날이었지요. 처음으로 국내에서 온 부장급 등 고참 기자들끼리
저녁자리를 가졌습니다. 제가 암시장에서 어렵게 구한 조니워커 한 병을
들고 오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구했어요"라며
찬사를 던지며 눈이 빛났습니다.

식탁의 대화는 별로 였습니다. 입심이 좋은 A씨가 "어제 오후부터 바로
직전까지 화장실을 스무번 이상 들락거렸어요"라며 말문을 열었지요.
B씨가 얼씨구나 기다렸다는 듯 "아예 나중에는 물만 줄줄
나왔어요"라며 맞장구 쳤습니다. C씨는 "이건 세균성 설사입니다.
국내에서 겪던 설사와는 차원이 달라요"라고 했고, 다시 A씨가 "설사를
하더라도 먹으면서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니면 영양 실조로
쓰러집니다"라고 진단했지요. C씨는 비감한 표정으로 "알코올로
위장의 세균을 죽입시다"라며 건배 제의를 했습니다.

명색이 전쟁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들 상당수가 섭씨 40도의 작열하는
더위와 파키스탄의 설사 앞에 픽픽 주저앉은 겁니다. 한번 살살 신호가
오면 이틀이 가고, 국내에서 갖고 간 약은 듣지 않는 종류였습니다. 저도
가끔 화장실로 달려간 적은 있으나 끊임없는 설사의 경지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금방 터질 줄 알았던 전쟁의 소식은 없었습니다. 혹 잠자는 사이에
터지지 않을까라는 긴장감으로 처음에는 눈을 붙이지도 못했지요. 시일이
갈수록 감각은 무뎌졌습니다. 체류 기간이 열흘쯤 지나자,
국경지대-난민캠프 등 한바퀴를 이미 돈 대다수 기자들은 기사 거리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즉시 뜨기 위해 사무실에 여행용 가방을 챙겨놓은 파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측은 "만일의 사태에 탈출하려면 인도 비자를 받아놓으라"고
취재진에게 권유했다가, "재 뿌리려는가. 전쟁 취재하러온 기자에게
탈출 이야기나 하다니"라며 핀잔을 받았습니다. 파키스탄은 늘 테러의
위험 속에 놓여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자란 자신의 눈 앞에
위험을 들이밀어 줘야 "어, 제법 위험하겠군"이라고 말할
족속들입니다.

저마다 아프간 내부에 대한 취재 유혹은 강렬했습니다. 저는 파키스탄
군부의 한 관계자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아프간의 수도 카불까지
가는 통로를 열어주는 조건으로 6000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국내 모 방송사의 후배 기자들은
아프간 땅을 밟기도 전에 붙들려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영국의 한
여기자는 국경을 넘자마자 스파이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철수하는 취재진이 생겨나자, 남은 자들은 조금
울적했습니다. 신문이 나오지 않는 사흘의 연휴를 무엇으로 채운다는
말인가. 파키스탄의 밤 하늘에도 보름달이 떴습니다. 차라리 일을 하고
있는 게 낫지, 이야말로 미칠 노릇이죠.

한번은 국경 도시 페샤와르의 밤거리를 차로 지나다가 'Ice-berg'라는
수은빛의 상호가 반짝이는 걸 보았지요(그때까지 암시장에서 비밀루트로
술을 구하는 걸 몰랐지요). 번개처럼 차를 돌리게 했습니다. "저건
틀림없이 생맥주 집이야.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고 외국인을 위한
공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당시 동승했던 다른 기자와 내기를
했지요. 들어가보니 햄버거 가게였습니다.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특급 호텔의 한 나이트 클럽이 토요일 밤이면 문을
열어 맥주를 판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재빨리 다녀온 다른 기자들의
전언. "맥주는 팔더라. 하지만 현지 여자는 못 들어오게끔 되어 있더라.
서방 기자들도 헛물만 켜고 앉았더라."

여자는 인구의 절반이라는데, 거리에는 아무리 다녀도 여자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운 좋게 마주치면 '히잡'으로 고혹적인 얼굴을
감싸고 있지요. 이 삭막한 땅에서, 인류를 구성하는 여자의 위대성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밤은 늘 길었습니다.

기다린 지 20일만에 전쟁은 터졌지요. 그러나 전쟁은 곁에 있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숙소에서 CNN 방송을 보고 알았지요. 전
CNN종군기자인 피터 아네트가 "베트남 전쟁 이후로 진정한 전쟁 취재는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첨단 미사일이 동원돼 공중으로 섬광만 오가는
요즘 전쟁에는 인간끼리 접촉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미 국방성의
브리핑 자료에 의존할 따름입니다. 일례로, CNN이 종군기자로 키운
아만포가 한달 째 '생생한' 현장 리포트를 하고 있는 곳은
이슬라마바드의 특급 호텔 옥상이었습니다. BBC, ABC, NHK 등도 바로
같은 옥상에서 이웃나라 아프간의 전황을 현장 중계하고 있었지요.

제가 전쟁을 봤다면, 기껏 전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난민촌입니다. 여기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자연의 명암에 따라
밝았다 어두워졌습니다. 처음 찾아갔을 때 오후 6시가 갓 넘었지요.
그런데 어둠 속이었습니다. 저는 발을 헛디딜까 땀을 흘렸습니다. 그
어둠의 토굴에서 아프간 난민들이 몰려나와 얼굴을 들이밀며, 구경하러온
저를 구경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지요.
난민촌에는 밤이 너무나 일찍 찾아옵니다. 그리고 긴긴 밤, 그들은
무엇을 할까요. 난민촌에 유난히 아이들이 많은 것은 다 까닭이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삶 속에도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일까, 실오라기
만한 신의 축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요. 물론 제 자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새벽에 눈뜨면 의식이 덜 깬
상태에서 조깅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결코 안 하던 짓이었습니다. 더
힘이 남아돌면 저녁 석양 무렵에도 한번 더 달렸지요. 땀을 흘리면
잡념의 3할은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건전한 수도승의 심신으로 거의 한달
만에 귀국했습니다. 귀국 다음날 저를 맞이한 것은 폭탄주였지요. 어디가
전쟁터인가요. (congchi@chosun.com)

▲최보식 기자는…1988년4월 입사했다. 현재 사회부 소속. 월간조선에
근무하던 시절 '최보식기자의 직격인터뷰'라는 타이틀로 숱한 인간을
만났다. 최근에도 신문의 인터뷰를 담당하던 중 아프간 전쟁 취재에
나섰다. 저서로는 '김유신 무덤에서 뛰쳐나오다' '얼굴'이 있다.
1960년 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