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바라본 북한의 판문점 ‘평화마을 ’의 전경.

판문점 비무장지대 북쪽 지역에 있는 북한의 '평화협동농장'. 마을
입구에 높이 160m의 인공기 게양대가 세워져 있고, 3~5층 건물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북한이 대남 선전용으로 건설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 6년간 살아본 경험이 있는 탈북자 이기성(가명)씨는
"이곳에는 특별히 선발된 농장원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
'우리는 농장원이 아니라 군대'라고 말할 만큼 군대식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장으로의 출근은 여름에는 아침 8시, 겨울은 9시다. 작업반장이
집집마다 돌며 사람들을 모아 작업장으로 나간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무조건 퇴근해야 한다.

이씨는 "아무 생각 없이 살기는 좋은 곳이라고 할만 하지만 정치학습이
심해 신물이 났다"고 말했다. 특히 남한 정세에 관해 교육이 많았다고
한다. 비무장지대 남쪽 지역에 있는 대성동 마을은
'갈보촌(매춘촌)'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조선은 미제의
식민지고 판문점에 미군이 있기 때문에 남조선 여성들이 몸파는
곳"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한다.

판문점 마을에 들어가면 완전히 차단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근처 개성을
가려고 해도 군부대 초소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안전보위부의
특별승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 사망이나 친족 결혼식과 같은
아주 특별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바깥여행이 완전히 금지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대단한 특혜도 주어진다. 가전제품 일체를 국정가격에
제공해 주며, 이는 평양시민도 누리지 못하는 특혜다. 외상으로도 주기
때문에 평화마을에는 집집마다 가전제품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일반농장과 달리 이곳은 국가계획에서 제외돼 있어 농사일도 비교적 쉽고
가을 분배도 풍족하기 때문에 먹는 것 만큼은 북한에서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곳 주민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지뢰다. 지뢰 사고가 많아 마음놓고
주변을 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평화마을'에 살려면 출신성분이 우수하고 충성심이 검증돼야 하며,
노인들은 살 수가 없다.

이곳에 살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수칙은 '자유주의' 금지다. 모든
행동은 집체적으로 하며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집집마다 못 방망이(못을 박아 만든 방망이)와 고추폭탄(던지면
고춧가루가 뿌려지는 폭탄)을 비치해 놓고 있다. 간첩이나 적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민간인에게 무기는 주어지지 않는다.

판문점 평화협동농장은 1982년 조직됐으며 작업반마다
국가안전보위부원과 인민보안원(경찰)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군대
이외에도 마을 민간인들로 조직된 교도대원들이 밤낮으로 마을 경비를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