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무라 신이치씨의 '20년 날조극'은 한 신문의 집요한 추적과 함정
취재를 통해 작년 말 발각됐다. 그 후 재검증 작업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날조 행각의 전모가 드러났고, 일본 고고학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사건 경위##

작년 11월 초 마이니치신문은 "10월 22일 새벽 후지무라씨가 혼자
유적지에서 구덩이를 파고 석기를 파묻는 장면을 비디오로 촬영했다"며
"본인도 날조를 시인했다"고 첫 보도를 냈다. 그동안 그의 발굴 성과를
놓고 일부 학자들이 제기해온 의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재검증 작업이 시작되고 홋카이도 소신후도자카 유적을
비롯, 그가 발굴했던 유적들이 속속 조작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30만년 전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됐던 도치기현 구즈우
인골 ▲오이타현 히지리다케 동굴 유적 등 다른 학자들이
발굴한 곳에서도 날조가 확인됐다. 재검증 작업을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있는 일본 고고학협회는 "후지무라 본인이 날조를 확인한 곳만 7개 지역
40여개 유적"이라고 발표했다.

##학계의 병폐##

'정밀'과 '정확'을 자랑했던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데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학자 간 상호 비판도, 대화도 없고 외국의 연구 성과에
눈을 돌리지도 않는다"며 '폐쇄적인 일본 고고학계 문화'를 지적했다.
검증반의 일원인 도자와 미쓰노리 메이지대학 교수 역시 "당장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공개와 교류'를
강조했다.

캐나다 맥길 대학의 이가와 후미코 교수는 '초보적인
발굴현장 문화'를 꼽는다. "서구에서는 중요한 발굴은 한꺼번에 하지
않는다. 검증을 위해 다른 기관의 연구자가 입회하는 데 일본은 그렇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 특별취재팀 역시 "일본의 발굴작업은
90%가 개발에 수반된 긴급조사다. 이른 시일 내에 끝내기를 독촉당하고,
발굴이 끝나면 바로 건물이나 도로, 심지어 골프연습장까지 생긴다"고
공감했다. 고고학 연대 측정 권위자인 헨리 슈월츠 명예교수(캐나다
맥마스터 대학)는 "후지무라씨와 같은 아마추어가 오랜 기간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시된 비판##

후지무라씨의 '발견'에 모두가 눈감았던 것은 아니다. 오다 시즈오
도쿄도 교육문화 주임연구원은 날조가 확인된 자자라기 유적에 대해 발표
당시부터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출토 형태가 부자연스럽다
▲동시대의 생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석기 파편물이 주변에
전혀 없다 ▲석재가 주변과 전혀 다르다는 등의 구체적인 이유도 붙였다.
1986년에는 이런 사실을 인류학 국제학술지에까지 게재했다. 그는 그러나
"이 논문에 응답은 전혀 없었다. 일본 학자들은 그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2년 전에 관련 논문도 발표하는 등 줄곧 의문을 제시해왔던 일본
공립여자대학교의 다케오카 도시키씨는 "마치 인체의 공중부양을 믿는
옴 진리교 신도들 같았다"며 "일본 고고학 연구 체제의 근본적 재편이
필요하다"고 아사히 인터뷰에서 한탄했다.

본인이 제기한 의문까지 무시되기도 했다. 오이타현 히지리다키에서
구석기인 뼈를 발굴했던 일본 벳푸대학의 가가와 미쓰오 명예교수는
당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했지만
교과서에까지 그대로 실렸다. 그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발굴한
유물에 날조 의혹이 제기되자 자살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다.

##반성론과 미련##

고고학협회는 후지무라씨가 발굴한 유물 1000여점 전체를 봉인하는
조치를 취하고, 검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재조사 지원·협조와 국가 지정 유적지에 대한 재발굴 허용을
촉구했다. 지난 5월 열린 공개토론회에는 600명의 학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자성론과 각종 대책을 제시했다. 학계 원로인 사하라
마코토 국립 역사민속박물관장은 "일본의 고고학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기초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일본 고고학의
'자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조작된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
일부는 재발굴 비용 지원을 요구하는 고고학협회측에 "학계가 알아서
하라"고 방관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적극 나서려는 움직임은 없다.
가장 많은 날조가 확인된 미야기현의 문화재보호과장 같은 이는 일본
언론에 대해 "아직 그의 고백만이 있을 뿐"이라며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