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原人' 유골도 날조… 日 역사교과서 수정 비상 ##

영웅심에 불타는 개인의 사기극인가, 일본 고고학계의 구조적 병폐인가.
작년 말 발각된 희대의 유물날조 사건은 일본 열도를 충격 속에
몰아넣으며 일본 고고학을 세계적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았다.

아마추어 유물 발굴가 후지무라 신이치(51)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 40여곳의 구석기 유물을 날조해온 사건에 대해 일본
고고학계는 개인 소행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무려 20년간 날조가
계속된 데는 학계 풍토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며, 심지어 일본
사회의 '과거 미화' 분위기를 지적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날조극이 발각됨으로써 70만년이 넘는다고 간주되던 일본의 인류사는
57만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베이징·자바원인에 비견된다며
온갖 상상력이 가미됐던 '일본 원인'의 낭만 가득한 세계는 허구로
판명났고, 역사 교과서는 첫 페이지부터 고쳐써야 할 운명에 처했다.

"가미다카모리에서 출토된 석기는 60만년 전 것으로 판정됐다.
이로써 원인(현 인류의 조상)이 일본 열도에 생존했음이
확실해졌다."

왜곡적 내용으로 문제가 됐던 일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중학교 교과서(최초본)는 일본사의 뿌리가 얼마나 유구한지를 설명하는
이런 구절로 첫 장을 시작하고 있다(날조 발각 후 수정). 26종의 고교
역사교과서 중 14종도 비슷한 기술이 사진·지도 등과 함께 들어있다.

그러나 문제의 석기를 비롯, 42곳의 유적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70만년 역사'는 기초부터 무너졌다. 고고학계는 "13만년 이전의
전기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소멸했다.
백지가 됐다"고 허망해하고 있다.

일본의 인류사가 70만년 전까지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후지무라씨의 20년에 걸친 '활약' 덕분이었다. 중기(~13만년 전)·
후기(~3만년 전) 구석기 시대의 존재는 그동안 여러 발굴자에 의해
적지 않은 유물이 출토됐고 학술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기 구석기 유물은 거의 100% 후지무라씨의 손을 거쳐서
발굴됐다. 1981년 이후 전기 구석기 유물이 출토된 10여곳의 유적은
예외없이 그가 발굴에 관여했으며, 그 대부분 조작된 것임을 본인이
자백했다.

이로 인해 일본 출판업계는 전기 구석기 시대의 기술을 삭제·수정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산세이도를 비롯, 고교 교과서를 만드는 8개
출판사는 후지무라씨가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 유물 관련 부분을 전부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베스트셀러 '일본의 역사' 시리즈를 출판한 고단샤도 날조
유물의 기술이 들어있는 책의 판매를 중단하고 개정판을 만들고 있다.
'구석기 고고학 사전'을 비롯한 각종 연감·사전도 해당 기술이 삭제된
개정본으로 속속 대체되고 있다.

수십만년 전 '지치부원인'이 살던 '원인의 마을'임을 선전하며
대대적인 관광객 유치에 나섰던 사이타마현 지치부시는 원인을
캐릭터로 사용한 술·과자 제조를 전면 중단하는 등 사태 수습에
분주하다. 일본 고고학계는 회복이 곤란할 만큼의 국제 망신을 당한 끝에
후지무라씨가 등장한 1981년 이전 상태로 후퇴했다.



( 도쿄=박정훈특파원 jh-park@chosun.com )
(권대열특파원 dykw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