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제로' 상황에선 고마운 망원경…
패션-생활정보엔 왜 그리 인색한지 ##

머리좋은 남자는 유용해서 좋다. 문제의 해법을 일러 주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는 누구든지 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지혜는 아무에게나
없다. 머리좋은 남자는, 공중에서 장미 꽃송이 뽑아내는 요술쟁이처럼,
날렵하게 해법을 뽑아 보여 주는 것이다.

머리좋은 남자는 얼굴도 훤해서 좋다. 머리의 회전만큼이나 탄력적인
육신이, 에너지를 눈부시게 뿜어내는 것일까.

머리좋은 남자는 용기가 있어 더욱 좋다. 「남자는 애교, 여자는
베짱」이라는 시속 풍조 속에, 남자의 용기야말로 방금 최상의 덕목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머리가 좋아 유용하고, 얼굴 훤하고, 용기도 있는 삽상한
남자와 같다.

항상 예리한 문제 제기와 함께 그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을
후련케 해 준다. 「시계 제로」의 상황 속에서, 그나마 미래를
내다보게 해 주는 고마운 망원경이다.

사설과 논평물 때문에 조선일보를 본다는 독자가 적지 않다.

실은 나도 그런 부류의 하나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굳이 사설·논평
때문만은 아니라도, 최소한 「제일 먼저」 그리고 가능한 한 「반드시」
읽는 아이템임에는 틀림없다.

갖 구워낸 빵처럼 향기로운 신문이 배달되어 오면, 우선 1면의 기사
제목을 확인한 다음, 2면의 사설 제목부터 살핀다. 그리고 3면
「기자수첩」의 제목, 5면 「만물상」의 첫줄(여기에도 제목을
달 필요가 있다), 7면 논평물의 제목을 훑고나서 다시 1면에 되돌아와
「팔면봉」을 읽는다. 팔면봉은 촌철살인의 미니
논평으로 그날 뉴스의 초점을 단 몇마디로 확실히 알려 준다.

이런 연후에, 사설 논평 칼럼 등을 차례로 읽고, 필요한 기사도 주워
읽는다. 이것이 나의 다단계식 조선일보 독법이다.

조선일보는 편집에 있어서도 일품이다.

고교 때, 미술교사가 말했다.

『대담하게! 충실하게! 이것이 데쌍의 요령이다.』

대담하게, 충실하게… 조선일보 편집은 레이아우트 상식의 담을 허물고
새 이미지의 날개를 편다. 조선일보 지면에서 신선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영희의 한·일 고대사 이야기 「노래하는 역사」가, 조선일보에 처음
실렸을 때, 타사 편집국장 출신의 한 장관이 격찬했다.

『그렇게 대담하고 그렇게 아름답운 편집은 처음이요.』

그리고 두어달 후, 그가 귀띔해 주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봤어요? 최근에 클레오파트라 관계 주간 연재를
시작했는데, 「노래하는 역사」 편집과 꼭 같으니, 견주어 보시오. 참
희한한 일이 아닙니까.』

『아사히가 조선일보를 모방했다 해도 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스스럼없이 답했다.

지난 9월 13자 조선일보는,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서
대피하는 인파의 모노톤 사진을 1면 상단 가득히 실음으로써, 독자를
놀라게 했다. 참담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그 지면은 참신한 예술
작품처럼 돋보였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청결한 용기로 뒷받침된
튼실한 취재에 있다. 신문 기사란, 모름지기 이렇게 날카롭고 육중한
것임을 인식시켜 주는 글발이다.

공직에 있을 때, 제일 무서웠던 것이 조선일보 기자였다. 후각(후각)이
뛰어나 「사건」의 낌새를 날싸게 알아차리고, 한번 물면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다. 무서운 사냥 체질이다. 특히 「유도신문(유도신문)」의
올가미는 가공했다. 요컨대 머리가 좋은 것이다.

이러니 공직자가 조선일보를 싫어할 수 밖에….

그 왕성한 취재력과 전진 기질. 그리고 창의성. 조선일보가
기획기사에 강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 고구려」를 비롯한 일련의
역사물은, 우리나라 문화사에 생생한 민족의 숨결을 불어넣은 획기적인
기획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고언도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여기자
사회에 나도는 불만이기도 한데, 조선일보는 고위직 여기자 키우기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하루는, 패션평론을 하는 딸 김유리가 푸념했다. 이제 패션은
중요한 문화 콘텐츠인데, 조선일보는 패션 기사를 잘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도, 「여기자 키우기에 인색한」 분위기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조선일보는 「남자」인가.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두 남자가 있다.
프로메테우스와 헤라클레스다.

프로메테우스는 지혜의 거인이다. 그리고 늘 인간의 편이다. 그는
천상을 다스리는 신 제우스와 끊임없이 대결한다. 그러나 이
대결에서, 신 중의 신 제우스는 번번이 진다. 프로메테우스의 지혜를
당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단에 바친 짐승고기를 신과 인간이 나눠가졌을 때도 그랬다.
프로메테우스는, 뼈다귀를 비계덩어리로 싼 것과, 살코기를 가죽으로 싼
것 두가지 중 어느 쪽이든 제우스더러 먼저 고르라 한다. 제우스는
탐스러워 보이는 외양에 속아 비계를 택했다.

앙심을 품은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공급하는 것을 중단한다. 불이
없어 고통 받는 인간을 위해, 프로메테우스는 회향풀 줄기에
천상의 불을 붙여서 전한다.

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커서스 산 꼭대기 큰 바위에
쇠사슬로 묶어 놓고, 독수리더러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한다. 간은 밤
사이에 새로이 돋아나기 때문에, 그는 이튿날이면 또 독수리에게 간을
뜯기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형벌이다.

이같은 프로메테우스를 풀어 주는 것은 헤라클레스다.

제우스신의 아들이요 행동의 영웅인 그에게는 지혜가 없다. 영웅적인
사업을 완성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지혜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우스 신의 엄명을 함부로 어길 수는 없다.

여기서 프로메테우스는 또 한번 지혜를 짠다. 바위의 한 조각과 사슬의
일부분으로 반지를 만들어 자기 손가락에 낌으로써, 「구속」의 형식을
갖춘 것이다. 그로부터, 반지에는 구속과 해방의 이원적 의미가
깃들여지게 되었다 한다.

머리좋은 남자 조선일보는 오늘날의 프로메테우스이다.

구속과 해방의 상징인 반지를 끼고, 오늘날의 프로메테우스도, 내내
「인간의 편」에서 일하는 거인이기를 빈다. 파이팅, 조선일보!
힘내세요, 프로메테우스! ( 작가·포항제철 인재개발원 교수 )


■이영희 교수는… 193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한국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11대
국회의원(전국구)과 공연윤리위원장(85~88년)을 지냈다. 대한민국
아동문학상 등 여러 아동문학상을 수상했고 '어린 선녀의 날개옷' 등
동화집과 수필집 '살며 사랑하며'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한일고대사 연구에 매달려 한일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흥미진진하게
다룬 조선일보 연재물 '노래하는 역사 1·2'와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또 하나의 만엽집' 등을 발간했다. 현재 포항제철 인재개발원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