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향당편에 보면 공자의 식성은 꽤나
까다로웠다. 이를테면 쌀밥은 희어야 하는데 노르께하다든가 파란 기운이
돌면 정색이 아니라 하여 물린다.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 가면
공부가주라 하여 공자의 가문에서 대대로 마셔내린 가주를
팔고 있는데 이미 공자는 집에서 빚은 술이 아니면 마시지 않았다.
가게에서 사온 음식은 먹질 않았고 집에서 만든 음식만을 먹었으니
공자가 살아 계신다면 식품공업이니 수퍼마켓이니 인스턴트 식품 따위는
존립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겨울에 나는 오이를 먹지 않고 살진
미나리는 봄에만 먹는 등 제철이 아닌 음식도 입에 대질 않았다.

공자의 아홉 가지 불가식이 공자가문인 공부에 어느
시기까지 계승돼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공부의 가법은
조상의 관행을 엄하게 지켜내리는 것이 법도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30년대까지도 공부에서는 고분에서 출토한 것 같은 구리거울(동경)을
썼다. 시계마저도 공부는 거부했다. 고대의 시보를 1930년대까지
계승, 매일 아침 포수가 쏘는 명포소리에 아침이 시작되고
밤에는 이포 삼포로 깊어가는 시간을 알렸다. 그 흔한
보온병 하나도 공부에 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웃 공자묘가 있는
공림에 나들이 갈 때도 차 끓일 화로와 숯을 수평막대에 메고 가는
종이 수행해야 했다. 수도시설도 거부하여 물꾼이 공자가 마셨다던
우물물을 길어다 담 밖에서 물꼬를 통해 안식구들만이 사는 내당으로
흘러들게 돼 있음을 보았다.

이토록 삼엄하게 옛 가법을 지켜내린 공부인지라 각종 식기도
예스럽고 공부채라 하여 메뉴나 조리법도 고풍이 물씬하다.
건륭제를 비롯, 역대황제며 장개석도 와서 대접받았다는
공부채는 130품이 올랐을 만큼 융숭했다 한다. 식기도 도자기·은제·
주석제 등 자질도 다양하고 모양도 구름형·오리형·잉어형 등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 공자가 썼던 식기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퇴계 탄생 500주년 잔치에 초대받은
공자의 77세손 공덕무 여사가 퇴계 종가에 선물로 가져온 것이라
한다. 공자의 가르침뿐 아니라 체온·체취까지 체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