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 교환 방문 연기 소식을 들은 이산가족들이 서울 남산의 대한적십자사를 찾아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br><a href=mailto:leedh@chosun.com>/이덕훈기자 <


오는 16일 제4차 남북 이산가족 교환이 이뤄지면 54년 만에 북에 두고 온
큰 딸(58)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있던 황선옥(79·부산
수영구 광안동) 할머니는 12일 오전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연기 발표를
듣고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정신을 수습한 황 할머니는 "서울 가서 기다리겠다. 우리 딸 보기 전엔
눈 못 감는다"며 서울에 있는 작은 딸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며느리
서금자(55)씨는 "상봉단에 뽑히신 후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라고 전했다.

북한이 4차 이산가족 교환 방문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산가족들은 이날 또 한번 '이산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다.

6·25 전쟁 통에 헤어진 둘째형 김성하(74·김일성 종합대학 교수)씨의
'남한 방문'을 학수고대하던 김민하(66)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가족들은 "그럴리가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부의장 가족들은 성하씨가 서울에 오면 전달하려고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첩과 지난 4월 숨진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딸 옥희(74)씨를 그리며 고이 간직해 온 원피스 등이
담긴 보따리를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날 서울 남산의 한국적십자사 남북교류국에는 이산가족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한적 이산가족과의 윤정모(34)씨는 "지방에 사는
상봉대상자 중 상당수는 이미 서울에 올라왔고, 외국 거주자들도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난감해 했다.

6·25 전쟁 통에 소식이 끊긴 부인과 아들을 기다리던 길영진(81·대전시
서구 삼천동)씨는 "테러 위험 때문에 (상봉을) 보류하다니 말도 안되는
핑계"라면서도, "50년을 참았는데, 언제든지 만나게만 해주면
좋겠다"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다.

50년 세월을 수절하며 두 아들을 키워낸 안정순(73·서울 금호동)
할머니는 아예 자리를 펴고 드러누웠다고 한다. 지난 열흘여 동안 6·25
전쟁 때 '회사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소식이 끊긴 남편을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 가슴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는 안 할머니는 "섭섭하지…
안 그렇겠나?"라고 탄식했다.

이북5도민회와 납북자가족 모임 등 이산가족 단체들은 "사전에 한마디
상의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취소하는 것은 이산가족들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이라고 분개하면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재개되길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