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덕광산의 운송용 컨베이어 벨트.북한은 서구에서 값비싼 장비를 들여와 광산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으나 운용 ·수리 등의 문제로 기계화는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어머님은 선보러 가자 하지만/ 이 가슴의 사연을 어쩌면 좋아/ 도시의
총각보다 쇠돌을 캐는/ 금골(금곡)의 그 동무가 마음에 들어」 90년대
초에 나온 이 서정적인 사랑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가사가
현실에서 너무 멀다. 「금골」은 함경남도 단천시의 검덕광산지구를
말한다. 북한 최대 외화 가득원으로 북한은 이 지대에서 연간
10억달러는 벌어들여야 한다고 말해 왔으므로 위정자의 입장에서
「백금의 골짜기」임에 틀림없다. 「백금산」이라는 TV드라마를
만들어 이곳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아예 마을 이름도 금골리로 지은
까닭도 이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아가는 수만 명의 광부들에게 해발 1800m가 넘는 이
고산지대는 「죽음의 골짜기」다. 납과 아연이 주로 매장돼 있는
검덕광산, 마그네사이트 세계 최대 산지인 용양광산,
정치범수용소(관리소)로도 유명한 대흥광산 등 험준한 마천령산맥
아랫자락에 고단한 광부들의 삶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 광부들은 미송환 국군포로, 1953년 남한에서 돌아온 인민군
포로와 그 후세들, 지주·인텔리 등 소위 출신성분이 나빠 북한사회에서
밀려난 추방자들로 구성돼 있다. 새롭게 투입되는 인력은 군에서 제대돼
무리배치된 사람들로 당위원회나 공장의 간부 역할은 이들이 몫이지만,
이들 역시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 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광부들은
군대와 같은 체계로 조직돼 있다. 국군포로나 인민군포로 어느 쪽도
영원한 군인으로 살다 가는 셈이다.

이 지구는 광맥을 찾아 땅속으로 수십 리 걸어들어가 다시 지하로 수백m
수직강하해야 하는 최악의 수직갱도다. 70년대부터 스웨덴·독일
등지에서 들여온 고급설비도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여서 호미로 캐고
바랑에 담아 나오는 원시적인 채굴작업이 계속된다. 수십 리 갱도에
들어갔다가 2m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한 달씩 묵는 경우도 있다.
햇빛을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구루병과, 나쁜 공기로 인한 진폐증은
거의 모든 광부들의 지병이다.

이곳에서 24년간 광부로 일하다 북한을 탈출한 장현수(가명·58·98년
입국)씨는 『90년대 이전에도 발파작업·낙석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배급이 끊기면서 자생력이 없는 이 지역 사람들이
가장 먼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국군·인민군 포로들 덕분에 강원도·제주도 할 것 없이
한반도 전역의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장씨는 『국군포로들의 고향
그리는 모습은 여기 실향민들과 다를 게 없다. 산을 잘 탔던 한 경상도
출신 광부는 고향을 좀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틈만
있으면 산 위로 올라갔다』고 전한다. 그는 "한국에 와 있는 대부분의
탈북자들도 북한에서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검덕광산의 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라며, "아직도 수천 명의 국군포로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