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오는 10일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개최되는 이슬람회의기구(OIC)와 아랍연맹회의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고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이 8일 밝혔다.
OIC는 이란 이라크 이집트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등 57개
이슬람국가들이 속해 있으며, 12억 이슬람 인구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이슬람 연합기구다. 이번 회의는 9·11테러공격 및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처음 열리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 근절 노력이 성공하는
데 이슬람권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이슬람권의 의견이 어떤 방향으로
모아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무사 사무총장은 이틀로 예정된 OIC 회의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예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프가니스탄 난민과 그들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테러 근절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테러의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타르의 한 관리는
OIC 회의에 병행해 하루 앞서 열리는 아랍연맹 22개국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주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리는 아랍연맹 외무장관들이 9·11테러공격 이후 미국 주도하에 전개되
온 테러와의 전쟁 전반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테러의 개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압델루헤드 벨카지즈 OIC 사무총장은 "특정 집단 또는 개인에 의한
테러와, 국토점령 및 식민지화에 대한 국가적 저항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테러에 반대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및
요르단강 서안지역 등의 점령은 규탄한다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은
9·11 테러공격을 비난하는 데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서는 미온적 입장을
취해왔다.
특히 공습 이후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격렬한 반미시위가 벌어지는 등
'이슬람 형제국'에 대한 공습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고 있어, OIC가
어떤 태도를 취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나라별 속사정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계기로 전세계의 이슬람국가들에
비상이 결렸다. 미국은 이번 공격을 서방과 이슬람권과의 대결이
아닌 테러 응징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이슬람 국가의
대중은 테러 물증이 없으며 민간인 희생 우려가 있다며 강력 반발, 자칫
이슬람권 전체와의 충돌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주요 이슬람국가들의
상황을 알아본다. ( 편집자주 )
◆ 파키스탄 =파키스탄 주요 도시에서는 반미 시위가 번져 최소한 3명이 사망했다. 카라치에서는 8~9일 이틀간 탈레반 지지자 수천명이 버스 3대를 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페샤와르에서도 2000여명 이상이 반미 시위를 벌였다. 케타에서는 1500여명의 시위대가 영화관 9곳을 습격하고 은행 9곳을 불태웠다. CBC는 현지발 기사를 통해 “무샤라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빈곤층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기울고있는 상황에서, 기왕의 비판 여론에 반미 정서가 가미되고 이슬람 무장집단이 나설 경우 자칫 정권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 사우디아라비아 =오사마 빈 라덴의 출신국으로 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기가 높다. 이 나라의 이슬람성직자들은 왕가에 미국의 아프간공격을
지원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왕가도 국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소요를 의식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대해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파드 국왕은 8일(현지시각) 정례 각료회의
후 중동지역 위기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요지의
짤막한 성명만 발표했다. 그러나 도시 곳곳에서는 빈 라덴을 지지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등 전례 없는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 지난 6일 사우디
동부 코바르의 한 쇼핑센터에서 폭탄테러가 발생, 미국인과 영국인 1명을
포함한 5명의 외국인이 사망했다. 사우디주재 미국대사관은 현지의
심상치 않은 반미 분위기를 감안, 아프간 공격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 8일(현지시각)부터 대사관 무기한 폐쇄에 들어갔다.
◆ 이라크 =이라크는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침략행위"라고 미국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도, 이라크가 공격 대상에 포함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테러 직후부터
"이라크가 빈 라덴의 테러 활동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로
판명될 경우 이라크도 미국의 공격 목표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8일 "미국이 확전할 경우 베트남전 못지
않게 길고 고통스런 패전을 겪을 것"이라며 "이라크는 아무 관계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9일 나지 사브리 외무장관은 알자지라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뭉쳐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팔레스타인 =야세르 아라파트 등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급진 과격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하마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이슬람권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군중시위 등을 통해 강력 저항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각) 오후 가자시 중심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1000명이 넘는
대학생이 참가해 미국의 아프간 공격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미
시위가 발생했다.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측 보안 병력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대학생 2명이 사망하고 최소 50여명이 부상했다. 하마스
지도자인 아부 샤나브는 "모든 미국산 제품 사용을 보이콧하는 한편
미국의 침략 행동을 계속 강하게 규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인도네시아 =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미국 지지를
밝혔지만 반미 시위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9일 자카르타에서는
이슬람학생운동연합 소속 200여명이 유엔 건물 앞에서 "미국과
영국이야말로 진짜 문명의 적"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미국
대사관은 폐쇄됐다. 시위대 수백명은 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밤샘 시위를
벌였고, 일부는 대사관 난입을 시도하다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에 강제 해산됐다. 이들은 "10일까지 정부가 미국 지원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면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고, 미국인들을 이 땅에서
쓸어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상태다. 남부 마카사르에서도
하사누딘 대학생 수십명이 지방의회 앞에 몰려가 워싱턴과의 관계단절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미국인 1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미국 대사관은 이들에게 바깥 출입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미국에 "더이상 확전하지 말고, 공격 대상을
아프간으로 국한해달라"고 주문했다.
◆ 이집트 =국민 대다수는 9·11테러의 원인은 미국의 친이스라엘
정책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같은 국민 정서 때문에 이집트 정부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나 조용히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도 과격 이슬람근본주의자 10여명을 체포했다. 과거 과격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이후부터 이집트는
테러 단체에 대해 무자비한 색출 작업을 벌여왔다. 이 때문에 80년대
이슬람근본주의 조직은 점조직으로 나뉘어 지방으로 분산됐다.
◆ 이란 = 시아파 근본주의 정권인 이란은 종교적으로 적대관게인
수니파인 탈레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란은 또 탈레반이
이슬람 교리에 정면 위배되는 아편을 제배했다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이란은 시아파가 가담한 북부동맹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최고 성직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8일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미국은
세계지배를 위해 아프간을 공격했지만, 결국 세계적 힘을 잃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이 10여년 동안 테러를
자행했는데도, 왜 미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란 외무부 역시 미국의 아프간 공격이 테러 행위를 근절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김수혜기자 sh-k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