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본 절만 도봉산 10여 곳, 북한산 20여 곳, 지리산 65곳…. 전국
600여 곳 쯤 되지요."
미국인 데이비드 메이슨(42·David Mason)씨는 날씨 좋은 주말이면
산신을 찾아 산으로 간다. 산에는 절(사)이 있고, 대부분의 절에는
부처님과 함께 그 산을 지켜주는 산신 그림이 있다. 그는 97년
연세대에서 산신 연구로 한국학 석사를 받은 뒤 99년에는 '산신(Spirit
of the Mountain)'이라는 책을 썼고, 홈페이지(www.san-shin.org)도
운영하는 '산신 전문가'다. 17년째 한국에 살면서 쉬지 않고 산신을
연구해 전국의 유명한 절은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다. 서울에 자리잡은
지는 이제 10개월 정도. 그래도 도봉산, 인왕산, 북한산의 주요 절은 다
가봤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인왕산 국사당을 찾았다. 중요민속자료 제
28호인 국사당은 메이슨씨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 원래 조선 태조
5년에 한양의 수호신사로 남산에 지어졌지만 1925년 일제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면서 인왕산으로 옮겨졌다. 단군왕검, 태조,
무학대사의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무신도 28점이 있어 그에게
소중한 '학습 장소'이기도 하다.
작년 6월 결혼한 필리핀인 아내 루데스 메이슨(25·Loudes Mason)씨 역시
절을 좋아해 늘 함께 다닌다. 강동구 상일동 집에는 전국에서 모은
그림과 사진이 수천장.
"산신 그림 속에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현자의 모습을 한 산신, 소나무, 호랑이, 폭포….
한국은 온통 산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산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산신이 삶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진
것은 당연하지요."
그는 81년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동양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그때까지 '산신'은 커녕 '한국'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82년 한국여행 중 절에서 산신 그림을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어요. 마치 교회에 부처그림이 있는 것처럼 정말 이상했어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그는 한국에 살면서
연구하기 위해 일부러 캘리포니아의 APU(American Pacific
University)에서 영어교육 석사를 받아 영어강사 자격을 얻었다. 이후
경주, 포항, 원주 등 전국에서 대학과 기업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산신 그림을 찾아다녔다. 경주에서는 하루에 절 17곳을 간 적도 있다.
그는 지난 1월부터 문화관광부 '2001 한국방문의 해' 기획팀에서
일하면서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목표는 '한국 절의 아름다움을
서양에 홍보하는 것'이다.
"한국은 갖고 있는 것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서울에서
북한산을 제외하고 다른 산에는 영어로 된 지도하나 변변하게 없어요."
그는 "절에 가면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은 많지만 산신 그림의
가치는 잘 모르는 것 같다"며 한국인의 '문화유산에 대한 무관심'을
슬쩍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