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부터 6년여동안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당시 인구의 30~50%인
2500만명 정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고, 그 이후에도 3세기동안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엔 ▲지하동굴에 숨어 사는 기독교도들의 음모
▲중앙아시아 지진때문에 발생한 요기(妖氣) ▲행성들의 충돌 등을
흑사병의 원인으로 생각했을 뿐 병명조차 몰랐다. 흑사병이 쥐 벼룩을
통해 옮기는 페스트로 밝혀진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뉴욕타임즈는 그러나 지난 3월 영국에서 발간된 '페스트의 생리학'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흑사병이 에볼라와 같은 출혈열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리버풀대학 수잔 스코트와 크리스토퍼
던칸교수.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쥐 벼룩은 숙주인 쥐가 죽은 뒤에야
사람에게 전염되는데, 당시 2500만명을 감염시킬 만큼 많은 쥐가
한꺼번에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흑사병의 전염속도가 매우 빨랐고
치사율이 높았다 ▲흑사병 사망자들은 가슴에 '신의 토큰(God's
token)'이라는 붉은 반점이 있었다 등의 이유를 들어 흑사병이 페스트가
아니라 출혈열의 일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흑사병의
소멸 이유와 관련해선 17세기말과 18세기 초에 걸쳐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출혈열 바이러스의 감염력이 떨어졌거나, 유럽인들에게
유전적 변이가 생겼을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송재훈교수는 "당시의 정확한 기록이
없는 까닭에 흑사병이 페스트가 아닌 다른 감염질환일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그러나 페스트도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50%가
넘고, '폐(肺) 페스트'인 경우 객담 등을 통한 사람간 감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흑사병이 페스트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