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집 사람들
은미희 장편소설·문학사상사

모국어를 갈고 다듬고 풍성하게 하라는 소명을 일차적으로 부여받은
이들을 시인과 작가라고 한다면, 은미희(41)라는 아직 낯선
이름은 그 소명의 주어로 당당하게 자리매김될 수 있을 듯 하다.
5000만원 고료 삼성문학상 장편소설 당선작인 이 작가의 '비둘기집
사람들'(문학사상)은 흡인력 강한 서사와 감칠맛 나는 언어구사로 우리
소설문학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사박스러웠다" "땀으로
뒤발한 몸" "는개" "너겁" 등 한 페이지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생경한 우리말과의 만남은 그 때마다 국어사전을 뒤져봐야 하는
부끄러움을 안겨 주지만, 씹을 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모국어의 속살을
들여다 볼 기회이기도 하다.

'비둘기 여인숙'은 도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지은 지 20년 넘은
허름한 한옥의 이름. 세상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버텨내지 못한 인물들만
손님으로 찾아오는 이 남루한 공간을 배경으로 4명의 주인공이 갈마들며
삶의 돌림노래를 연주한다.

가진 것의 전부가 이 비둘기 여인숙일 뿐인 40대 중반의 여주인 열목.
술에 취해 포달을 부리며 자신의 목을 죄어오던 아버지를 피해 다방에서
차도 팔고 몸도 파는 2호실 투숙객 청미. 동대문 시장에서 떼온 숙녀복을
위 아래 가릴 것 없이 5000원에 팔며 삶을 영위하는 현대판 장돌뱅이
4호실 성우. 그리고 고향 마을 이장을 삽으로 내려치고 30년간 가명으로
숨어지냈던 7호실 사내 형만. 작가는 이 바닥 인생들의 과거와 현재를
씨줄과 날줄 삼아 이야기를 얽어내면서, 일상의 고달픈 삶을 애써 묻고
살려는 우리의 내면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각성의 문신을 새겨 넣고
있다. 어쩌면 볼수록 짜증나고 자칫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신산한
인생들의 삶이 그토록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시적
함축성 높은 문장과 생동감 넘치는 대화 덕분일 것이다.

"작가정신이라고 말해도 좋을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열의"(한수산),
"어려운 생의 미세한 그늘에 대한 작가의 성찰"(최윤), "문장, 플롯,
인물창조 등에 들인 정성과 공력"(조남현) 등 심사위원들이 보낸
칭찬이,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빛내게 할 '격려'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다만, 꼼꼼하지 못한 교정의 결과로 보이는 몇몇 오·탈자들은
옥에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