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국제고교를 다니던 시절, 아랍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아랍인이면서도 미국적인 것을 좋아했다. 항상 나이키 옷과 신발
차림이었고, 랩송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국인 학생들은 그를
외면했다. 오히려 경멸의 시선만을 던질 뿐이었다. 다른 아랍인 학생들은
그를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주먹싸움에 말려들었다. 그 때 미국인 학생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너희 동양인들도 아랍인들처럼 저렇게 폭력적이니?" 그는
이후 완전히 '왕따'를 당했다. 당시 언어문제와 서구적 사교방식에
적응을 못한 채 역시 '왕따'를 당하고 있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같이 테니스나 치지 않을래?" 그는 헤드폰을 벗어버리고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됐다. 아프리카 출신의
친구 한 명도 합세해 우리는 '소외된 3인조'가 되었다.
아랍인 친구의 미국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갔다. 어느 날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미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고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의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미국 시민권을 반드시 얻고야
말겠다고 했다.지난 11일 테러가 터진 후, 나는 그와 함께 찍은 색 바랜
사진을 꺼내들었다. 지금쯤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고 있을까. "미움과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적을 만들게 한다. 적이 아니어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적으로 만들어 복수하게 만든다." (영화 "아메리칸
히스토리 X" 중에서)
( 최항섭·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상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