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 만들면서 나 자신을 채워갔죠”##
‘봄날은 간다’ 시사를 마친 유지태(25)는 발그레 달아있었다.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 대숲에 안기는 바람
소리, 마당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말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
가슴에 이는 사랑의 불꽃 소리… 그런 것들에 붐 마이크를 들이대는
청년으로 지난 봄 5개월을 살아온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내 자신을
채워갔다"고 말한다.
"리얼리티를 가장한 리얼리티를 벗으려 애썼어요. 아무리 그럴듯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내 심장에서 아니라면 다 거짓인 게
드러나더라구요." 지방 방송국의 라디오 프로듀서 은수(이영애)와 함께
소리를 찾아다니는 상우. 둘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은수는
'변치 않는 사랑'을 믿지 않고, 상우는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절제된 멜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허진호 감독
두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유지태는 한장면을 스무가지 이상 다른
식으로 가보는, 남다른 영화 경험을 가졌다. "중간 편집본을 본
'무사' 김성수 감독이, 제 역할 보곤 '완전히 허진호네,'
그러더라구요. 허감독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서 느껴지는 대로 해보도록 열어줬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감독의 뜻이 제 안에 녹아난 것 같아요."
열아홉살 때인 95년 패션모델을 시작, 영화 '바이준'으로 데뷔한 것은
큰 키(187㎝)와 탄탄한 몸 덕이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까맣게 염색하고
얌전하게 컷트한 요즘 모습은 기름진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줍은듯,
소년같은 미소를 짓는 현실 속의 그는 상우 모습을 지키고 있다.
친구들과 술마시다 은수 전화를 받을 때 창문 아래 쭈그리고 앉아
옮겨다닌다거나, 처음 은수 집에서 잔 날 아침, 거실에서 자고 있는
은수에게 다가가 입맞추는 장면 등은 바로 우리 옆에서 발견하는 보통
청년의 모습 그대로다.
"그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스무번씩 해봤어요. 상우같은
스타일은 어쩐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흔히 말하는 남성적인 태도로
해보기도 하고… 그런데 역시 톤이 튀더군요." '봄날…'은 유지태의
여섯번째 영화다. 패션 모델로 잘 나가던 그가 '바이 준'으로 데뷔한
것이 97년. 서울 관객 3000명이란 흥행 참패와 함께 가라앉아버릴 뻔한
그가 회생 한 것이 98년 '주유소 습격 사건'. '뻬인트' 역할로
눈길을 모았던 그는 지난 한해동안 '동감' '가위' 리베라메' 3편의
영화에 등장하면서 성가를 높였고 광고 출연도 6편이 넘었다. 하지만,
'n세대' 청년의 이미지가 똑같은 형태로 과잉소비되면서 스스로 진력을
느꼈다.
"작년 여름 '리베라메' 촬영 때가 완전히 피크였어요. 제 자신을 찾고
싶어서 광고랑 좀 정리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영화인데,
오랫동안 할 수 있으려면 길게 봐야죠. '바이 준'이 그렇게 넘어진
다음 사람들이 '쟤, 뭐냐'했던 기억이 지금 큰 힘이 됩니다. 처음부터
승승장구 했더라면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을 몰랐겠지요."
대학원(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영화가 좋고
재미있어서라고 짤막하게 설명한다. 다음 작품은 민병천 감독의 SF
'내추럴 시티'. 경찰관 역을 맡아 요즘 신체 훈련을 하루 5시간씩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