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동이나 도문쪽에서 바라보는 북한 모습은 살풍경스럽지만 북한
내부의 관점에서 국경지대는 '희망의 산실'이다. '국경연선지대'라
불리는 평북 신의주, 자강도 만포, 양강도 혜산, 함북 무산, 회령, 온성
등 압록강과 두만강을 따라 형성된 이들 도시는 내륙과는 딴 세상이다.
사람과 물산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역시 중국의 개혁개방 영향이고,
식량난이 한결 기세를 보탰다. 대표적인 정치적 추방지였던 두만강변의
탄광도시들도 이제 '고유한 기능'을 잃고 있다.

북쪽으로 가는 열차는 언제나 만원이다. 통행증 발급은 몹시 까다롭다.
푸른줄이 그어진 특별 통행증이 있어야만 갈 수 있어 발급에 드는 뇌물에
시세가 형성돼 있을 정도라고 한다. 90년대 초에 북한돈 200원쯤 들던
것이 요즘에는 500원 정도다. 통행증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는 루트는
개발돼 있다. 기차를 타고 가다 통행증 검사가 있기 전 뛰어내려 육로로
걸어 들어가는 식이다. 그래서 당국은 최근 국경도시 초입에
'10호초소'를 설치해 육로 또한 통제하지만, 생존에 대한 끈질긴 의지로
구멍은 자꾸 뚫린다.

국경지대의 장마당은 매우 흥성스럽다. 화려한 중국 물품과 내륙의 북한
산물이 함께 모여있다. 체제로부터 소외된 화교나 북송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외화상점도 성업을 이룬다. 경제력 차이로 인해
토착주민들과의 알력도 만만치 않다.

신의주와 혜산이 가장 대표적인 국경도시다. 평양보다 미려하거나
정갈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더욱 생기있고 풍요롭다. 평양에 대한
콤플렉스도 별로 없다. 강건너 중국사람들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의식도
훨씬 깨어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남녀의 모습이나 당간부를
비판하는 보통사람의 모습도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자발적
실직자들이 장사에 열중해 있고, 내륙에서 들어온 부랑자들로 무질서해
뵈지만 여자들은 유행에 민감해 평양사람조차 영향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국경지대 사람들은 단속을 피하기만 하면 중국 TV도 볼 수 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장면을 중국TV를 통해 구경하면서 남한에 대한
의식에서도 일대 변혁을 겪었다고 한다. "노동당 입당은 소용없다.
돈이면 최고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전 주민이 '장사에 미쳐있다'고
보여질 정도로 경제우선주의가 북한의 철옹성과 같은 정치장벽에 맞서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은 기차를 타고 다시 북한의 내륙으로 퍼져나가
북한사회의 전반적 의식 변화를 주도한다.

김정일이 "신의주가 지도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혜산이 없어도
사회주의혁명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은 북한 전역에서 회자된다.
중앙정부와의 불화로 불이익도 적지 않다. 국경지대 거주민이라면 일단
'불온'하게 낙인찍혀 있기도 하고, 공개처형도 이 지역에서 가장 흔히
일어난다. 뜨내기들이 많고 밀수가 성행하면서 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무엇보다 이 지대는 탈북의 최종코스다. 96년에는 잇따른 탈북사태를
막기위해 두만강과 압록강 부근 5곳에 국경경비여단이 창설되거나
신의주, 만포, 혜산, 청진과 선봉 등 5곳에 국경경비여단이 창설되었고,
국경경비초소도 500m~3km마다 세우는 등 탈북 방지를 위한 경계를 강화해
왔다. 최근에도 경비는 더욱 철저해지고 있다고 한다.

두만강변의 ▲온성·새별군~사타자 ▲남양시~도문시 ▲종성~개산툰
▲회령시~삼합 ▲노덕리~남평 ▲무산시~승선, 압록강변의
▲혜산시~장백현 ▲중강진~임강시 ▲만포시~집안시 ▲신의주~단동 등에
각각 교역통상구가 있어 중국과의 접선은 또 그것대로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