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2월드컵은 아시아의 최고 기술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만큼 정보와 기술력의 경연장이 될 전망이다. KT 아이컴이
차세대 통신기술이라는 IMT-2000을 국내외 보도진, 대회 관계자 등에게
시범 서비스할 예정이고, KTF와 SK텔레콤은 3세대 이동통신기술을
시험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또 벽걸이 TV라고도 불리는 PDP TV도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번에 선보이는 기술들은 '대중을
위한, 대중이 이용하는' 기술들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각 방송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표준화된 프로토콜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았지만
이번에는 각종 휴대용 컴퓨터나 통신 단말기를 갖고 있는 외국인
기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없이 독자들에게 직접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할
것이다. 혹시라도 기술개발에만 급급한 나머지 우리의 기술이 그들을
불편하게 한다면 일본과 비교됨은 물론이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기술의 왕국이라고 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이미 발생했었다. IBM사가 첨단 시스템인 'Info
96'을 선보이면서 '풀 서비스'를 장담했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필요한 자료의 내용이 엉뚱하게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도 않아서 기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info 96'이 고개를 숙이고 일 처리를 못하는
'impo(impotence) 96'으로 둔갑했다.

미국의 실패를 눈여겨본 프랑스는 98 월드컵 당시 각종 첨단 장치를 70%
정도만 실행하고 너무 복잡해서 조금이라도 오류를 낼 여지가 있는
시스템은 아예 실행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호텔·철도·비행기 예약
같은 것을 단 한번에 할 수 있는 연합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만약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이 한꺼번에 마비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프랑스 자원봉사자들은 외국인들을 위해
'공중전화 걸어주기 운동' 같은 걸로 승부를 걸었고, 그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애가 없는 기술은 차디찬
기계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김주용(33)씨는 98년 월드컵 때 프랑스조직위원회(CFO)에서 한국담당
미디어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유럽 축구의 인프라, 세계축구의 흐름
등을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www.loveworldcup.com)를 운영 중인 김씨는
프랑스 그랑 제콜(INPG)을 나와 영국 임페리얼 공대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