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60)의 시는 부드럽다. 시가 시인을 껴안고, 시인도 그
시를 품는다. 보채지 않았으나 누군가를 두런두런 달랜다. 까무룩 잠이
들어도 시는 여전히 등을 들고 서 있거나, 늦여름 밤 부채를
살랑거리며 곁에 앉아 있다.
'시인은 눈이 내릴 동안 누군가를 업고 싶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하늘도
바람도 햇살도 그의 몸 속에 들어가 풀이 되었고, 그는 간밤에 또 풀을
낳는다. …아, 그 하찮은 것의 뿌리털 끝에 지구라는 혹성이 달려
있었다니….'(차례로 '눈' '새는 자기 길을 안다' '풀' '풀·2'
에서)
육신의 나이로 갑년을 맞은 시인은 등단 나이 마흔에 이번으로 8번째
시집 '풀'(문학세계사)을 낸다. 시집이 나오기 전 잠시 만났던 그는
소년 같은 설렘으로 모습이 화사하다. "너무 압축되고 함축되다가
옆구리가 터진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에게서 '온기'와 '향기'와 '울림'을 탐낸다. 이
시집 뒤에 '시인론'을 붙인 시인 신경림은 "치열한
탈속"이라는, 김종해 시인의 새 변모를 짚어 준다.
시의 왕국에 사는 시인은 홀연 제왕이 되어 '짐'의 하교를
설파하는 것일까. 바람 부는 것 허락하였고 꽃 피는 것 막지 않았고,
다시 봄 오는 것 허락하였고 봄 가는 것 막지 않았으니, '천년 뒤 또
바람이 불고/ 꽃이 피거든/ 짐의 궁성에 사는 모든 이들/ 이같이
하라'('남기는 말씀')는 칙어를 내린다.
시인은 때로 일필휘지의 혐의를 가진, 짓궂은 농담 같은 시를 '나'의
웃음샘에 걸어 놓는다. '개같이 헐떡이며 달려오는 봄/ 새들은 깜짝
놀라 날아오르고/ 꽃들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속치마 바람으로/ 반쯤
문을 열고 내다본다'('봄바람'). 혹은, '삽입하자마자/ 안에서
놓치지 않고 물고 돌아가는/ 탄력 있는 금속성/ 황홀하다
황홀하다/…/아무도 없는 잠긴 문 밖에서/ 나는 절정의 순간을
교감한다'('열쇠').
시인은 그 기쁨을 감지하자 시적 육탈의 경지에까지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 '내'가 파지가 되고 '내'가 잡초가 된다. 시집
대신 '내'가 작둣날 속으로 들어가고, 밭에서 잡초로 뽑혀나갈 명단
속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전체적으로 등(燈), 길(路), 난(蘭),
눈(雪), 어머니(母) 등의 이미지가 45편의 시를 낭창낭창하게 휘어
놓는다.
문학박사가 된 아들과 더불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시인은 이제
"인간의 이름은 모두 따뜻하다"고 말하고픈 멀건 능선에 올라 있다.
그런 시집 한 권이 '나'의 서가를 훈훈하게 덥힐지 혹 아는가. 연륜은
끝이 없고, 인생은 피고짐을 반복하는 꽃인데. 그것이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는 진술마저 가능한 이유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