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5층의 한평 반 남짓한 ‘생명의 전화’ 상담실. 올해 83세인 표재환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21년의 세월을 보냈다.
책상과 전화기 한 대만 달랑 있는 이 작은 사무실에서 표 할아버지는 1주일에 평균 한 번씩,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2시간 동안 답답한 마음에 상담 전화(02-763-9194)를 찾는 사람들의 인생 하소연을 들어온 것이다. 그가 낯모르는 사람의 ‘인생유전(인생류전)’을 전화로 상담해 온 시간은 무려 3000시간이나 된다.
“군사 정부 시절에는 아들이 감옥에 갔다고 울면서 전화하는 부모가 많았고,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됐을 땐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는 서민이 꽤 됐죠. 최근엔 불륜에 빠졌다든지,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든지 하는 가정파괴 현상을 호소하는 전화가 많아요.”
꼭 ‘해답’을 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답답한 서민들은 얘기만 들어줘도 위안을 얻는다”며 “울면서 하소연하는 동안 스스로 해답을 찾곤 한다”고 전했다.
표 할아버지는 지난 80년 우연히 ‘생명의 전화’ 상담일을 시작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교육부에서 일하던 그는 마침 옆에 붙어있던 생명의 전화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 상담 일을 자청했다고 한다.
최고령·최장 시간 상담원으로 활동 중인 표 할아버지는 3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생명의 전화 25주년 기념식’에서 상을 받는다.
그는 죽을 때까지 전화상담원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10여년 전 부인과 사별한 후 “전화 상담이 오히려 즐거운 인생의 말벗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삶에 지친 전화 저편의 상대에게 “지금은 밤이 지나가는 터널이다. 곧 아침이 온다”는 자신의 말이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는 한 전화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