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S아파트 103동 806호는 지난 10여년간
박금순(여·47)씨의 보금자리였다. 방 2개의 11평짜리 이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박씨는 선천성 정신지체장애인인 작은아들(24)과 함께
살아왔다.
박씨는 최근 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큰아들(28)이
부양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탈락되면서
아파트도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큰아들은 군대에서 다리를
다쳐 돈을 벌 능력이 없다"며 "고민 끝에 지난 7월 큰아들의 호적을
이혼한 남편쪽으로 옮겼다"고 했다. 박씨는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면
우리는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며 불안한 표정이었다.
늦어도 2005년까지 영구임대 아파트를 비워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영세민들이 서울에만 2만1000여가구에 이른다. 이들은 최근 '서울
영구임대아파트 대책협의회'를 결성, 집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 실태와 입주자 반발
서울시는 작년 12월 '영구임대주택 운영 및 관리규칙'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수급권자'(생활보호대상자) 탈락자는 4년 이내에 영구임대
아파트를 비워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퇴거대상이 된 가구는
서울시 전체 영구임대 아파트의 44%인 2만1000여가구나 된다.
퇴거대상 주민들은 "서류상으로 영세민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10년
이상 살아오던 집에서 무조건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 소득이 없는 자녀라도 20세가 넘으면 연령에 따른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등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은 기초생활보호법상의
생활보호대상자 기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실력행사에 나섰다. '서울 영구임대아파트 대책협의회'는
지난 25일 노원구 중계근린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거리로 내쫓는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라"고 요구했다.
윤범진(44·재활용업) 회장은 "무작정 내쫓기보다는 영구임대 아파트를
추가로 확대하는 등 기본적인 정부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정부와 서울시 입장
하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단호하다. 자격 기준을 상실한 입주자들을 계속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살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생활보호대상자를 10만명으로 추정할 때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이 7만~8만명인데 그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억울한 탈락자'를
구제하기 위해 정밀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2만1000여가구나 되는 서민들의 반발을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8일
"2003년까지 20만채의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건설교통부 등은 서민용 임대아파트 대책을 준비 중이지만, 이들이
구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