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달픈 여행객들에 ‘작은 위안’ ##

1994년의 기차여행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양강도 혜산에서 출발해
두만강을 따라 무산 등의 국경도시, 길주·청진을 지나 평양에 이르는 긴
여행은 다름 아닌 내가 속해 있던 혜산철도국 예술선전대
순회공연이었다. 기악, 성악, 화술(재담) 등을 맡은 대원 20여 명으로
구성된 선전대의 일원으로서 나는 드럼을 쳤다.

당시에도 기차는 생명선과 같은 것이었다.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나 장사꾼들로 철도역 질서는 엉망이었고, 절도·폭행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줄이어 일어나 역마다 검열원, 철도안전원,
철도보위지도원 등이 진을 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사태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우리 예술선전대가 동원됐다. 우리
혜산철도국 선전대는 기량이 높기로 꽤 이름나 있었다. 청진의
북부철도총국에서 침실, 화장실, 식당, 연습실이 잘 갖춰진 객차 하나를
보내주어 제법 호화로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문밖의 풍경은
전혀 딴판이었다. 발 디딜 곳 없는 지옥철 끝에 호화판 우리 천국칸이
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우리가 역에 내리면 그 지역 당간부들이 극진히 맞아주었다. 역구내에
있는 회의실이나 역전 공터에서 그때그때 모여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공연의 주내용은 "수령의 교시를 잘 관철해 철도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자"는 것이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나 멋진 연주와 신나는 재담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레퍼토리도 그 나름대로 다양하다. "노을 비낀 철길 위에 젊은 기관사/
기적소리 울리며 기차를 몰았네"로 시작되는 '젊은 기관사'를 비롯해
'통일무지개', '사회주의 지키세' 등의 노래가 단골 메뉴였고, 흥겨운
민요가 적절히 섞이기도 했다. 딱딱한 내용도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서
계몽하면 웃음을 터뜨리곤 한다. 흥겨운 기악연주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이미 '예술'이나 '선전선동'으로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공연은
많은 박수를 받았고, 덕분에 평양 공연후 묘향산 답사권을 보너스로
받았다. 묘향산을 오르기 위해 자강도 희천에 도착한 날이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으로 전국은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돼 우리의 묘향산
관광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키워드/ 예술선전대... 예술선전대는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광산,
건설현장 등을 순회하면서 노래, 무용, 음악 공연을 통해 노동의욕을
고취하거나 당정책을 해설하는 임무를 띤다. 1961년 김일성 지시로
기동예술선전대가 전국적으로 조직됐다. 1970년대부터 각 지역 단체별
예술선전대의 활동을 강화해 왔으며, 1980년에는 김정일 지시로 정무원
문화예술부 산하에 중앙예술선동사를 조직하기도 했다. 평양에 있는
20여 일반 예술단체의 경우도 영화예술인 경제선동대, 무대예술인
경제선동대로 나뉘어 경공업공장과 탄광에 나가 각종 선동공연을 하고,
각 도(직할시)에 한 개씩 구성돼 있는 예술단들도 해당지역의 경제선동을
맡는다. 최근에도 경제난으로 저하된 노동의욕을 끌어올리고, 이완된
질서를 정비하기 위해서 예술선전대 활동은 강화되는 추세다.

※박선화(30)씨: 양강도 혜산 출생. 혜산철도국 예술선전대에서
기타, 드럼 등을 연주하는 기악대원으로 활동하다 2000년 가족과 함께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