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는 “떠나야만 비로소 내가 보이고 내 삶의 풍경들이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고 했다.멈추지 않는 갈증과 갈망.그는 그 갈증 때문에 소설을 쓰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조용호(40)의 소설집은 아련하다. 1980년을 전후한 "지난 날들"이
작가의 가슴에서 소리없이 파동친다. 아버지에 대한 허구적 모멸과
애증이 이중액자에 포개진다. 그는 하나의 작품에서 항상 두개의 그림을
그린다. 등단 3년째 첫 소설집을 상자하는 작가는 벌써부터 펜이
담백하다.

그의 소설들은 강력한 주제를 지향하지만, 그 소재들은 현실의 그물망을
가물가물하게 희롱하며 평론의 억센 손아귀를 잡힐 듯 빠져나간다. 두
그림을 덧대놓은 풍경화는 은은한 향기 속에 잠긴다. 그것은 때로 연상의
젖무덤에서 흐르는 살냄새다(혹은 8살 연하였던가). 그것이 어린 시절의
회상이든 어른이 된 다음 이야기이든 상관없다. 소설은 실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실감이 나도록 하는 것이라는 원칙과도 얽매이지 않는다.

조용호 소설에는 주인공의 주변에 항상 여인이 서성인다. 과거와 현재
혹은 '나'와 친구 등으로 겹치는 인과의 전개는 읽는 맛을
절박하게 돋군다. 연애소설을 "사칭"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게 하는
전략이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박완서는 이 소설집에서 '떠남'을
읽어내고 있고, 해설을 붙인 문학평론가 하응백은 '황혼의 만가'를
얘기한다.

조용호의 소설은 민주운동 시절이 그들의 과거의 틀로 설정된다.
노동현장과 절단기가 등장하고, 캠퍼스 비탈과 파업 옥상에는 투신과
분신이 얼룩진다. 사랑은 남아서 현장의 좌절들을 비련으로 증언한다.
그렇기에 조용호의 꽃잎들은 날리지 않고 어느날 뚝! 떨어진다. 동백꽃,
비파나무, 능소화, 해당화 등이 관능과 회한을 앞세우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작가의 정념을 함빡 빨아들인다. 포스트모던한 문체와
리얼리즘의 전통이 한몸으로 뒹군다.

그곳에 그의 "비극적 낭만주의"가 독자를 기다린다. 작가는 비통함의
극점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행을 택한다. 베니스, 파리, 마추픽추,
타지마할 등으로 손을 잡아 끌지만, 그곳에도 죽음과 이별이 이승과
저승을 서럽고 정연하게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대학시절 노래패였고, 얼마전 노래기행집을 낸 적도 있다. 그
탓일까. 소설 곳곳에는 민요와 상엿소리가 질긋질긋 엉긴다. 때로
운동가요도 토막토막 깨진 화석처럼 묻혀 있다. 이것들은, 그러나 소설적
장식물은 아니다. 현재 한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조용호의
이번 작품집은 많은 부분 그의 삶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수수바람' '능소화'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그
동백에 울다' '비파나무 그늘 아래' '잉카의 여인' '바람꽃'
'이별' '황색 오르페우스' '들바람' '가을 나그네' 등 11편의
단편이 그대 오목가슴에 멍울을 만들어도 작가의 책임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