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의 어느 날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은행 앞에서 쉽지
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가정교사를 하고 그 보수로 받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우리 언론이 보수 일색이니 그 빈 자리인
진보적 색채를 드러내겠다는 깃발을 내건 한 신문이 국민주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움직임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견해를 갖는 언론매체가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서였다. 나는 지금 그 신문의 주식 14주를 갖고 있다.
내가 창간주주라고 해서 언제나 이 신문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기자들의 기사가 실리는 날이면 전철이나 가판대에서 사 보았을
뿐이다. 대학신문이나 별 다를 것 없는 그 신문의 아마추어리즘이
혼란스러웠다. 결정적으로 말해서 애초의 열정을 제외하고 이 신문이
다른 언론매체에 비해 특별히 더 민주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기사에서 기계론적 평등주의, 비현실적 이상주의, 근거 없는 선민의식
따위가 적지 않게 드러나는 탓이다.
그에 반해 다른 일간지는 여러 번 정기구독을 한 적이 있다. 6년에 걸친
프랑스 유학생활 동안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선은 친구들이 그렇게
골라 보내준 때문이었으나, 나중에는 정보의 양이나 편집의 밀도가 나를
그러한 선택으로 이끌고 갔다.
나는 언론이 불편부당한 매체라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을 밝힘에 있어서는 객관적이어야
하나, 그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명백한 자기입장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신문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얻고 있다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두어 해 전부터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보게 되었다. 내가
주주로 있는 그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공평무사한 지식인이고,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사람은 저의가 의심스러운 사이비 지식인으로
매도되는 '안티 조선'운동 얘기이다.
당겨 말하자면 나는 이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식인의
자발적인 의견 표명을 근거없는 명분으로 억누르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이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자
권리이다. 하지만 그 비판은 옹호라는 또 다른 가능성에 언제나 스스로를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며칠 전 한 문인단체가 성명서를 발표하며 여기에
끼어들었다. 세금문제를 두고 정권과 신문 양쪽에 양비론을 펼치고 있는
듯한 성명서 곳곳의 수사와 췌언을 제하면, 결국 그들의 입장은 고스란히
'안티 조선'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문학이 현실과 초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권력에 반하여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권력이 방송의 확성기까지 등에 업고 신문사들의 도덕적
권위를 허물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시기이다. 탈세혐의가
부분적으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추정 세액의 수십·수백 배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날린 이 정부가 그것을 단죄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지금
신문은 정권 앞에서 명백한 약자이며, 약자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은
문학의 속성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신문을 억압없이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거의 매일 빠짐없이 조선이나
중앙·동아일보를 읽는다. 그 때마다 내가 다른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듯이, 적어도 내 선택에 타인의 억압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자유인이며 스스로 의견을 선택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만일 정권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어 강제로 신문이
사라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오면, 십수년 전에 그러했듯이 내 얄팍한
시간강사료와 원고료를 모두 꺼내 다시 구명 헌금함에 넣을 생각이다.
(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