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지음
태학사, 28,000원

흘러간 영화는 필름이라도 남기지만 막내린 연극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우리 연극 발자취를 꼼꼼히 뒤지고
정리, 평가해 낸 책이 나왔다.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장으로 있는
중진 연극평론가 유민영(64) 교수의 '한국연극운동사'는 구한말 옥내
극장이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때부터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성공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연극 100년사 주요 사건과 흐름과 인물의
기록이다. 그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이 책은 3.1운동 이후 민족적
각성의 분위기 속에서 박승희 유치진 등 선구적 인물들이 활동하면서
시작된 한국 연극의 도약이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어떻게 맞물리며 변화
발전해 갔는가를 성찰하며, 방황하는 오늘의 우리 연극이 갈 길을
고민한다.

특히 역사의 뒷전에 묻힐 뻔 했던 연극계 야사 비사들도 숱하게
곁들이고 있는게 특징이다. 1900년대 상류층 고관들이 연극 여배우들과
놀아나 물의를 빚은 일, 엄숙한 체 하던 개화기 지식인들이 애욕을
묘사한 판소리를 즐기면서도 신문엔 외설적이라고 매도하는 글을 쓴 일
등은 한국 사회 풍토의 과거와 오늘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23살의
소설가 김유정이 여류명창 박녹주를 짝사랑해 2년간이나 끈질기게
쫓아다닌 이야기는 저자가 70년대 후반 병상의 박녹주를 직접 인터뷰하고
쓴 내용이어서 생생하다. 딸 3형제를 배우로 만들고 국수장사를 하며
모은 돈을 모두 연극에 쏟았던 극단 '조선연극사'의 지두한 등 연극에
정열을 바친 인물들 비사에 저자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
비사들은 당시 자료는 물론이고 60년대부터 만났던 연출가 유치진, 배우
복혜숙 이서구 등 고인들과 생존하고 있는 김동원 고설봉 선생 등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채록됐다. 그 이면사들 덕택에 '한국연극운동사'는
좀더 입체적인 문화사가 됐으며 읽는 재미도 듬뿍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