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두만강'을 불러 만인의 심금을 울린 가수 김정구씨의
데뷔곡은 1934년에 발표한 '항구의 선술집'이었다. 그보다 8년 뒤인
1942년 항구를 무대로 한 또하나의 히트곡이 나왔다. 고운봉씨의
'선창'이었다. 그 노래를 부른「민족의 가수」고운봉씨가 엊그제
타계했다.
이들이 노래한 '항구'는 당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일제치하에서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민족의 서러움을 항구에 쏟았다. 항구의
선술집에서 술로 시름을 달래거나 선창가를 거니는 쓸쓸한 유랑자의
심경을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 민족의 아픔을 보듬었던 것이다. 지난달
30일 작고한 황금심씨도 '타향살이'로 유명한 남편 고복수씨와 함께
일제 암흑기와 6·25전쟁 후 피폐된 국민들의 시린 가슴을 달랬다.
생전에 고운봉씨는 '국악만해도 인간문화재가 있는데 대중가수는 좋을
때만 즐기는 소모품 정도'라고 말했다. 대중가요인에 대한 정부의
푸대접과 사회의 경시풍조에 대한 서운함이 깔려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건강이 뒷받침돼 80 나이에도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황씨처럼
왕년의 화려했던 명성이 잊혀진 채 병과 가난으로 고생하는 원로가수들도
적지 않다.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타계하자 주요신문들은 1면 중간으로
부음을 전했고 방송은 특집편성으로 그를 추모했다. 전후 황량한
국민들의 정서를 노래로 달래준 대중가수에 대해 진심으로 예우를 표한
것이다. 재즈의 고향인 미국 뉴올리언스시는 최근 공항이름을 전설적인
트럼펫 연주자 루이 암스트롱을 기리기 위해 '루이 암스트롱 뉴올리언스
국제공항'으로 바꿨다.
우리도 가슴으로 예우할 만한 '국민가수'가 적지 않은데 그들을 위한
기념관도 없는 데다 굳이 따지자면 훈장서열도 아래쪽이다. 방송사나
후배가수들조차 선배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아 원로들은 더욱 외롭다.
그들은 요즘 젊은 가수들처럼 수백만장의 음반이 팔리는 복은 없었지만
세월이 가도 언제나 만인의 가슴을 적셔주는 노래를 남겼다. 북한처럼
'공훈'이니 '인민'이니 칭호는 달아주지 않더라도 대중문화인에게도
응분의 예우는 해주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