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만 와히드는 인도네시아 사상 최초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당선된
역사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와히드가 축하와 기대 속에서 취임한
이후 21개월간 인도네시아 정국은 혼란과 파탄의 연속이었고, 와히드는
불명예스럽게 '탄핵'당한 인도네시아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이자 이슬람 학자였던 와히드는 1999년10월20일
인도네시아의 대통령 선출과 탄핵 결정 등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협의회(MPR)에서 초대 대통령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집권 초기 그는 400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련의 민주화 정책을 실시해 오랜 독재에 찌든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2월 그는 군부 최고실력자였던 위란토 장군을 동티모르
폭력사태 연루 혐의를 들어 전격 해임했고, 4월에는 2명의 경제관료를
특별한 이유없이 해임해, 국회 청문회에 소환되는 등 논란을 샀다.

뇌일혈로 시력을 거의 상실한 그는 무기력과 무능력으로 정치 혼란 및
경제 침체를 야기, 국민의 신망을 잃기 시작했다. 또 공식석상에서
실언을 일삼고 수차례 독단적 인사를 단행, 정부 관료와 군 경찰마저
등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이어 8월에는 '불록게이트' '브루나이게이트'로 불리는 금융횡령
스캔들이 터져 국회의 진상조사특위가 조사에 들어감으로써 처음으로
탄핵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1년2월 국회가 해명요구서를 발부하는 등
탄핵 절차를 밟기 위한 절차가 개시됐으나, 와히드는 혐의를 부인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