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그들이 그라운드에 함께 있을 때 두려울게 없었다'.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김일권 등 초기 멤버들이 주춧돌을 놓자 85년에 선동열(KBO 홍보위원)과 이순철(LG 코치), 86년에 한대화(동국대 감독)가 합류해 '최강 해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기 시작했다. 해태는 한차원 높은 그들만의 끈끈함으로 똘똘 뭉쳐 86년부터 89년까지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한국프로야구사에 굵은 글씨로 신화를 써내려갔다.

한대화는 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사실상의 결승전'에서 8회말 역전 결승 3점홈런을 쏘아올렸고, 선동열은 굳건하게 마운드를 지켜 드라마같은 우승을 일궈낸 주인공.

사실 85년 졸업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로부터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받아 선동열은 해태 입단을 놓고 갈등에 빠졌다. 해태와의 계약금 마찰까지 겹쳐 현역 입대라는 초강수까지 들이미는 등 우여곡절 끝에 85년 후반기부터 팀에 합류한 선동열은 그해 7월2일 대구 삼성전에 첫 등판, 8회에 5안타를 맞고 5실점하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선동열은 대포알 같은 직구와 가공할 슬라이더로 기라성같은 선배타자들을 제압, 그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선동열은 후반기에서만 7승을 올리며 방어율 1위(1.70)에 올랐다. 하지만 이것도 시작이었을 뿐. 96년 일본 주니치로 이적할 때까지 '7년 연속 방어율왕'이라는 불멸의 기록과 1점 이하의 방어율(86,87년), 통산 최다승(146승)의 대기록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갔다.

'선동열 같은 투수가 한명만 더 있었으면 한국야구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은 그럴싸한 수사가 아니라 그의 존재를 너무나 잘 표현한 말이었다.

선동열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하면 상대팀 타자들은 서두르기 시작했고 '동열불패'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타석에서는 OB에서 이적해 온 한대화가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다. OB에서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간염까지 생겨 야구인생에 일대 위기를 맞았던 한대화는 내심 고향팀 빙그레로의 이적을 원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호랑이 유니폼을 입혔고, 86년 해태에 입단한 한대화는 제 세상을 만난 듯 방망이를 휘둘렀다. 사실 한대화는 폭발적인 장타력을 지닌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타이틀을 독식했던 슬러거도 아니었다. 하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찬스때마다 어김없이 터뜨리는 한방은 86년 승리타점 1위(16개)에 오르는 등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속에 머물게 만들었다.

〈 스포츠조선 민창기 기자 huel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