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미국·일본·유럽 모두 연초 예상했던
것보다도 좋지 않고, 언제 회복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하다.
중남미의 경제불안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우리 경제도 좋을 수가 없다.

경기가 침체될 때는 거시경제정책을 팽창적으로, 경기가 과열될 때는
긴축적으로 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기본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잠재성장률보다 낮게 경제를 위축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성장을 인플레 없이 오래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최근 재정, 금융정책을 통해 경제의
위축을 막겠다는 것은 올바른 정책대응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상황에서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을 2분법으로 놓고
상충되는 목표라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우리 경제가 과잉투자로
인하여 경상수지 적자가 심화되고 외환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라면
거시경제정책을 긴축적으로 하여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것이 바른
대응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오랜 금융시장의 불안과 구조적
취약성으로 투자가 크게 위축되고 수입 감소로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
나는 상황에서는 구조조정을 위해 굳이 거시경제정책을 긴축적으로
끌고갈 필요가 없다. 현재의 낮은 금리수준에서도 이자를 제대로 못 갚는
기업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구조조정을 촉진시킬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기자본이 부실한 은행들이
지금 당장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이들 한계기업들의 퇴출을 지연시키고,
정부는 금융시장과 노동부문의 불안이 증폭되는 것을 우려하여 이를 은행
탓으로 미루고 적극적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매사가 그러하듯이 경제정책에도 균형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기가
침체되면 이를 다소 활성화시키는 것은 옳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그
동안의 구조조정정책이 후퇴하거나 제도개선을 위해 새로 도입된
제도들의 적용이 풀어져서도 안 된다. 기업·금융 구조조정은 장기간에
걸쳐 일관성 있게 추진될 때 비로소 경제체질 개선이라는 효력이 나타날
수 있다. 단기적인 경기상황에는 거시정책 수단으로 대응하되 구조조정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경제 어려움의 본질이 단순히
세계경제 침체나 경기순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취약성에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전환기에는 어느 경제나 투자가 위축되고 성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자기자본이 충실치 못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고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차입을 줄이려 하는 반면, 증시를 통한 자본조달은 쉽지
않을 때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변화된 감독제도 및 회계기준
하에서 자본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을 만큼 기업의 재무구조와
투명성이 개선되었을 때 투자도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한계기업들이 퇴출되고 대폭적인 부채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져야 함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본이 잠식된 은행들에
대해 추가적인 자본증액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만약 정부가 다시 경기를 부추겨 성장률을
올리려 한다면 그 결과는 한계기업들의 부채비율 증가, 장래 처리해야 할
더 많은 부실 축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금년에 3~4% 성장한다고 해도 그리 나쁜 성장률은 아니다. 금년도
세계경제 평균성장률이 3%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경기가 크게 위축될 때
거시정책으로 위축을 막을 필요는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들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뿐더러, 이를
과용할 경우 장래 부담만 늘리게 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균형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 생각된다.

( 서강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