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프랑스 대통령이 신문의 집중 포화 속에서도 위기를 넘겼다.
시라크는 파리 시장 재직 중이던 1992~95년 가족과 측근들을 동반한 여행 경비로 사용한 현금 240만프랑이 불법 정치 자금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 법원의 증인 소환 명령을 받을지도 모르는 형편에 놓였으나, 법원이 17일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시라크는 특히 르 몽드와 리베라시옹 등 일간지로부터 연일 공격을 당했다. 여행 경비 스캔들로 딸 클로드가 증인으로 조사를 받았고, 부인도 소환될 가능성이 높았다. 리베라시옹은 이를 두고 ‘시라크네 집에 불이야’라는 1면 제목을 뽑아 약을 올렸다. 광고회사 출신인 클로드는 시라크의 공보보좌관을 맡아 아버지의 연설과 대외 발언을 막후에서 기획해 왔다. 그래서 르 몽드는 전화를 받은 시라크가 “대통령은 지금 부재 중인데, 그분 따님을 바꿔드릴까요”라고 하는 만평을 1면에 실었다.
이런 수모 속에서도 시라크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을 맞아 연례적인 TV 회견을 통해 반격을 개시했다. 시라크는 매년 이 회견에 신문사는 일절 부르지 않고 공·민영 3개 TV의 저녁 뉴스 앵커들만 질문자로 초대해왔다.
그는 이날 80분 동안의 생방송 회견을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해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적인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총리의 사회당 정부 정책을 예상 이상의 강도로 공격했다. 당일로 경제·노동·법무 장관이 흥분해서 공개 반론을 낼 정도로 TV 정치의 효과는 컸다. 결국 시라크는 사법부와의 문제를 여야의 정쟁으로 확대, 바로 다음날부터 언론의 초점을 좌우 동거 정부의 정면 충돌과 대선 정국으로 전환시켰다. 비판적 신문들을 멀리 하면서 대국민 일방 전달이 가능한 TV 회견을 통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능한 정치 9단 시라크의 노회한 술수였다.
( 파리=박해현특파원 hhpar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