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공을 지배하는 것은 역리이다. 모든 상식과 순리는 ‘우리가 먼저 살고봐야 한다’는 논리로 타기된다.
눈속임, 사기와 협잡, 상대방 뒤 캐기, 뒤통수 치기. 평상시라면 저자 거리에서 몰매를 맞아도 시원치 않은 '범죄'들이다. 하지만 전쟁의 시공에서는 다르다. 은폐와 엄폐, 적정 탐색, 적진 깊숙한 후방 침투, 기습이다. 훈장받을 일들이다.
하나의 전제만 있으면 된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에 관한 분별력만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전쟁의 시공을 지배하는 역리의 하이라이트는 폭력에 대한 판단이다. 살인은 폭력이고 죄악이다. 하지만 적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 또는 그녀는 영웅이 된다. 전쟁의 시공에서 살인은 범죄가 아니다. 살인은 ‘우리 편’이 살기 위한 생존의 전제 조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 사회 일부 정치인들과 각종 시민 단체들이 국민의 이름으로 내뱉는 독설이나 험구 욕설은 전쟁의 논리에 너무나 충실하다. 그러니 화를 낼 필요도, 나무랄 이유도 없다. 설득하려는 노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집권당 어느 의원의 말마따나 현재의 상황을 ‘언론과의 전쟁’ ‘민주화를 위한 성전(성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귀에 상식을 근거로 한 호소나 나무람이 호소력을 가질 이유도,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그들이 지금 자신들의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라면,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적이고, 그렇다면 적진에서 들려오는 비난이나 비판 나무람은 영광이고 훈장이며 전공(전공)이지 결코 욕된 일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일까. 집권당 간부가 언론사를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대고도 끝내 ‘사과’는 하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굳이 공개했어야 했느냐는 토를 달아 ‘유감’을 표시할 뿐이다. 어쩌면 내밀한 곳에선 ‘그래 속시원히 잘했어’라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제적인 신망을 얻고 있는 언론 단체가 한국의 언론상황을 걱정하고 이를 신문이 보도하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되돌아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고칠 생각은 아예 없는 것일까. 고칠 생각은커녕 정부 대변인이 나서 시시콜콜 문장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다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한다. 그 일을 총지휘하는 당사자가 기자였던 때 그는 독재 권력을 비판하는 글을 월간지에 기고했다가 권력의 하수인들이 휘두른 칼에 허벅지를 찔리는 중상을 입고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었던 ‘용기 있는 기자’였다. 도대체 그랬던 그로 하여금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사를 향해 이 같은 적개심과 분노를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못해 그저 서글픈 생각만 든다.
조선일보 기자가 우리 사회 토론문화의 척박함을 한탄하면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면 청와대 대변인은 공개적인 브리핑을 통해 ‘공감한다’면서도 ‘너희들이 뭐 잘났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타박하고, 총리까지 지낸 원로가 나라의 상황을 진단한 칼럼을 기고한 데 대해 ‘그런 글을 쓴 그는 누구 편인가’를 묻는다.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어느 정치인의 언행은 어처구니없다 못해 허망하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가 구독하는 신문을 향해 ‘그 신문은 언론도 아니다’고 한다. 이런 말에 발끈해 조선일보가 자신의 언행을 비난해주길 바라서일까. 하긴 그는 ‘적군’으로부터 듣는 욕설은 곧 ‘아군’으로부터 받는 훈장으로 치환된다는 전쟁의 역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한국이 처한 상황을 '우리 편'과 '우리가 아닌 모든 사람들' 간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진심으로 지금이 전시라고 생각하세요?"
(편집부국장 hj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