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후암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6일 교내 자투리 땅에 만든 학교 숲에서 익모초 덤불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식물 관찰일기를 쓰고 있다.어린이들의 얼굴에 호기심과 웃음이 가득하다. <br><a href=mailto:wjjoo@chosun.com>/주완중기자 <

서울 용산구 후암초등학교. 교문 왼쪽 300평 규모의 자투리 땅에
때죽·당귀·이팝·살구나무 등 재래종 수목 680여그루에 새파란 잎이
가득하다. 나무 밑동엔 깽깽이풀·애기똥풀·패랭이꽃·쑥부쟁이·구절초
등 15종의 야생화 수백포기가 무성하다. 느티나무 몇 그루와 직사각형
운동장, 시멘트 건물 한 동뿐이던 후암초등학교는 올 들어 숲 속처럼
파릇해졌다.

학교 안 자투리 땅에 나무를 심고 콘크리트 담 대신 수목으로 울타리를
두르는 '학교 숲 가꾸기' 운동이 활발히 번지고 있다. 99년부터 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김진현·김진현)'는 올해 참가신청 학교가 117개 학교로 99년 17개
학교에 비하면 7배 가까이 늘었다고 10일 밝혔다. 그러나 재원 사정
등으로 지금까지 모두 50개 학교만 지원하고 있다. 숲을 통해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후원은 ㈜유한킴벌리와 산림청이
맡고 있다.


지난해 3월 이 운동을 시작한 후암초등 박종연(58) 교장은
"아이들이 방과후 PC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평교사 시절부터
'나무부터 심겠다'고 별렀다"고 했다. 인근 공사장에서 흙까지
얻어오면서 묘목을 사다 심어 결국 숲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6일
후암초등 숲에는 보라색 꽃이 핀 익모초 덤불 위를 날아다니는
배추흰나비를 따라 관찰일기장을 든 5학년 3반 어린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99년 9월 신축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개교한 수원 원천동 원일 초등학교.
공사 뒷마무리가 덜 끝난 채 서둘러 학교 문을 열어 소란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한응(51) 교장은 "온종일 법석을 떠는
아이들을 어떻게 진정시킬까 궁리하다가 나무를 심기로 했다"며 "그 뒤
전교생들이 차분해져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숲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 학교 안팎 3곳에
화단과 숲을 만드는 중이다.

경기도 안양 신기 초등학교는 건설 현장에서 나온 흙 150트럭분을 받아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붓고, 폭 10m, 길이 200m 규모의 풀밭을 만들었다. 그
뒤 교사들이 의왕시 택지개발지구를 찾아가 벌목 위기에 처한 재래종
나무 120여그루를 얻어와 모양을 갖추었다. 그 뒤 '생명의 숲'
지원금으로 단풍나무 등 묘목 2500그루를 더 사다 학교 담과 풀밭에 심어
푸르게 만들었다.

'생명의 숲' 이수현(32) 사무부장은 " '학교 숲 가꾸기'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하는 「포지티브」 환경 운동"이라며
"어린이, 교사, 학부모 등이 함께 힘을 모으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생명의 숲'은 2005년 50개 학교에 대한 시범사업을 마치는 대로, 이
같은 성공 사례를 모아 일반 학교로 차차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후암초등학교

6일 오전 서울 후암초등학교 교정.

모눈종이 공책에 톱니바퀴 모양의 야생화 잎새를 정성스레 그려넣던
5학년 한서현(12)군은 "풀이 꼭 공룡 같다"는 친구들 놀림에 쑥스러운
듯 웃었다. 서현이 공책 앞장엔 나팔꽃 그림과 함께 "꽃송이가
기울어져서 아저씨가 나팔을 부는 것 같다"고 적혀 있었다. 담임
김진한(김진한·34)씨는 "2학년 때 강릉에서 전학온 뒤 서먹해하던
서현이가 학교 숲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며 서울에 정을 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미(12)양은 "옛날엔 학교가 끝난 뒤 곧장 집에 갔지만 요즘엔
친구들과 달팽이를 잡으며 논다"고 했으며, 임정아(12)양은 공책에
"미모사 줄기에 손을 대면 간지러운 듯 슬슬 움직여서 신기하다"고
적고 있다.

"어린 시절 목포 외갓집 논둑길에서 메뚜기를 잡곤 했죠. 풀·꽃·벌레
이름 하나 모르는 서울 아이들이 안쓰러웠어요." 서울 후암초등학교
박종연(58) 교장은 작년 내내 작업복 차림으로 학부모들과 함께
학교 안 공터에 둔덕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지난달에는 학교 뒤편
남산에서 꿩이 날아와 모두를 즐겁게 했다.

수원 원일초등학교 이한응(51) 교장은 6일 사무실에서 출근길에
뒷산에서 뜯어온 아카시아 잎을 말리고 있었다. 토끼에게 먹일 풀이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그는 "정서가 불안한 신설학교 아이들을
다독거리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온종일
밀짚모자에 감색 작업복 차림으로 지낸다.

"아침에 울상으로 등교한 아이도 자기가 직접 가꾼 식물을 보면 활짝
웃습니다. 산만하고 거칠던 아이들이 눈에 띄게 안정됐어요."

학교에 숲을 만들면서 어린이와 교정이 밝아지는 모습들이다.

■수원 원일초등학교


지난 1일 오전 수원 원천동 원일 초등학교 운동장. '원일 초등학교를
사랑하는 아빠들의 모임(약칭 학사모)' 회장
석장호(41·회사원)씨 등 회원 10여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 가장자리에 고정된 그네, 철봉 등을 운동장 2~3m 안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건설업체 사장인 회원 차병국(44)씨는 소형 굴착기를 몰고 와
작업을 돕고 있었다. 다음달 초 지하수 관정을 뚫은 뒤 9월에는 운동장
가장자리에 폭 10m, 길이 150m짜리 풀밭을 만들고, 인공 냇물이 운동기구
사이로 구불구불 흘러가게 만들 계획이다.

'학사모'는 이에 앞서 교내 보도, 학교 담과 뒤편 주차장에 숲 3곳을
만들어냈다. 매달 첫째, 셋째 토요일 짬을 내 모여 먼저 블록을 뜯어낸
뒤 자녀들과 함께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동안
머루·다래·앵두·살구나무, 수수꽃다리·붓꽃·좀씀바귀 등 90여종의
수목을 1500여그루 심었다. 교문에서 본관까지 30여m 길이의 진입로에
벼·보리·가지·쑥갓 등을 심은 고무 함지 수십 개를 놓고,
토끼·오리·거위·칠면조·오골계·진돗개 등 동물 10여종이 사는
우리도 세웠다.

아이들도 매주 1~2회 화단 잡초를 뽑고, 씨앗을 심었다. 6학년
오기쁨(13)양은 "내가 심은 팬지가 비온 뒤 쑥쑥 잎이 나 신기했다"고
말했다.

'학사모' 총무 박태정(40·농기구제조업)씨는 "처음 이사왔을
때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학교가 꼭 공장 같았다"며 "한 그루, 두 그루
나무가 늘면서 학교가 쾌적해지고, 공기도 맑아졌다"고 말했다.

학사모는 지난해 4월 '아버지 달리기·씨름 대회' 때 결성됐다. 뒤풀이
때 "정기 모임을 만들자"는 석씨의 제안에 이한응(51) 교장이
"나무 심는 작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회원은 10명에서 40여명으로 늘었다. 시청 공무원, 대기업 부장,
중소기업 사장, 연구원 등 직업도 다양하다. 학교 행사가 있으면 직장에
월차를 내고 참석하는 열성파도 적지 않으며 회원 가족들끼리 야유회도
다녀왔다.

회장 석씨는 "도시에서 자란 외아들에게 생명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며 "나무를 함께 가꾸면서 자연스럽게 '사랑'도 표현한다"고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