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혼은 무효야, 무효!”
9일 경기도 용인 민속촌 초가집 마당. SBS 사극 '여인천하' 촬영
현장은 전에 없이 소란스럽다. 길상(박상민)이 장난스레 '결혼 무효'를
흥얼거리는 가운데, 윤원형(이덕화)과 난정(강수연)의 혼인 장면 촬영이
시작됐다. 이날 마침 '여인천하'가 '태조 왕건'을 제치고 시청률
1위(42.6%)로 올랐다(AC닐슨 코리아 조사)는 소식이 나왔다. 그래선지
연출자 김재형PD의 목소리에는 더 힘이 실렸다.
촬영장에선 '클로즈업'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여인천하'
출연진들의 하소연이 실감난다. 1분 정도는 쉽게 넘기는 얼굴 클로즈업은
'여인천하' 성공의 한 요소. 그러나 연기자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기도 한다. 눈에 핏줄 선 것 하나까지 잡힐 정도여서 강수연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시 눈 충혈 안됐는지, 뾰루지가 나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할 정도"라고 말한다.
김PD는 그러나 연기자들 속내를 개의치 않는다. 이날도 이덕화 김영란
강수연 얼굴을 차례로 화면 가득 잡아 놓고 '하나' 부터 '쉰'까지
또박또박 세어나갔다. "이렇게 좋은 날이 어디 있어,"(이덕화에게)
"어렵게 키운 딸 여의는 순간이잖아!"(김영란) "눈물 좀 쭈르륵
흘렸으면 좋겠어!"(강수연) 연기자들에게 외마디 고함을 보탠다.
"너무 힘들다, 오빠 그냥 이혼하자." 강수연이 이덕화에게 농담을
건네며 촬영장을 빠져나온다. 강수연은 "평소 열둘 넘어가는 법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오늘 이상하네…"라며 기자들에게 의미 있는 눈길을
준다. "고개만 약간 끄덕여도 입술 부분이 잘릴 정도의 클로즈업이라
정말 힘들다"고 말하는 그는 "문정왕후 전인화씨와 '맨날 이렇게
찍다가 우리 두 사람 눈 빠지겠다'는 말을 나눌 때가 많다"고 했다.
화요일이면 '여인천하' 팀과 KBS '명성황후' 팀이 맞닥뜨리기도
한다. 문정왕후 전인화가 실제 남편인 대원군역 유동근과 만나는 일도
벌어진다. 이덕화는 "유동근이 '여인천하' 남자들은 왜 그렇게 쪼다
같냐고 시비를 걸어온다"고 전한다. "기다려봐, 임마"하고
응수하지만, 사실 몇달째 과장된 분위기의 신파조 연기를 하려니
지루하다"고 은근히 불만을 털어놓는다.
능금을 연기하는 탤런트 김정은 거취 문제도 이날 관심사였다. SBS
제작본부가 21일 시작하는 새 주말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에 김정은을
캐스팅한데 대한 김재형PD의 반발은 여전했다. 김 PD는 김정은을 옆에
앉혀두고 '다른 드라마 출연 절대 불가' 방침을 몇번이고
확인했고, 자리를 뜨면서도 "정은이 너 확실히 해"하고 못을 박았다.
김정은은 "아직 계약을 한 것은 아니다"라며 시작이 열흘 밖에 안남은
새 드라마 출연에 대해 확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던 SBS 관계자들은 "김정은을 딴 데 못준다는
문제나 '여인천하' 테이프가 북한에 간다는 얘기들은 김PD의
희망사항으로만 알아달라"고 했다. 김PD가 자리를 뜬 후 나온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