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을 사실상 불허하고 있는 데 대해 황씨를 초청한 미 의회측 관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황씨도 미국 방문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황씨 초청장을 들고 방한한 미 의회측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의 태도를 전해들은 미국 의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으며, 미국 의회에서 후속대응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황씨 방미 무산시 미 의회측 대응

미 의회의 초청장을 갖고 방한한 척 다운스(Chuck Downs·전 미국 공화당 정책위원회 보좌관)씨는 5일, 우리 정부가 제기하는 황씨 ‘신변안전 보장’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초 제시 헬름스 전 상원 외교위원장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황씨의 안전문제를 협의했고, 지난달 28일 외국 귀빈 방문시 안전을 담당하는 국무부 외교안전국 소속 2명의 전담요원까지 지정됐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 의회측은 이미 국무부와 황씨 일행의 방미시 숙소와 차량, 운전기사, 경호요원 물색 등 구체적인 계획까지 협의했으며, 국무부 소속의 전담요원들은 FBI와 경찰 등과 협조, 사설 경호원들도 일부 고용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신변안전만 보장되면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고 해, 이에 대한 충분한 조치를 취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반대하는 데 대해 미국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황씨가 북한 내부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 북한의 입장을 한국정부가 도와주기 위해 황씨를 침묵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번에 황씨의 방미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상·하원 의원들이 국무부에 황씨 방문과 관련해 행동을 촉구하는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초청장을 보낸 의회 지도자들은 물론, 상당수 의원들이 황씨 면담이나 황씨 방미 허용을 촉구하는 의회 결의안(resolution)을 채택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그는 황씨 방미 시기에 대해 “한국정부는 이달 대신 올 10월이나 내년 초를 주장하고 있다고 하나 그때는 더 시끄러워져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미 의회 공화당 중진들과 함께 황씨를 초청한 디펜스포럼 재단의 수잰 숄티 회장도 4일 “만일 그렇게 한다면(방미를 불허한다면) 우리는 뭔가 큰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황장엽·김덕홍씨 어떻게 지내고 있나

미 의회의 황씨 방미 초청 사실이 알려진 4일 이후, 황씨와 황씨의 비서격인 김덕홍씨는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황씨의 거처에 전화를 걸면 그를 보호하고 있는 국정원 관계자가 “안 계신다”는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김씨는 3일 밤까지 자신의 휴대전화로 외부와 통화했으나, 4일 오전부터 일절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황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탈북자동지회 관계자는 “두 분이 반드시 미국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 “어제(4일)부터 두 분이 함께 있으며,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덕홍씨는 5일 밤 조선일보에 전화를 걸어와 “연금상태는 아니다. 정치적으로 휘말리기 싫어 핸드폰을 꺼놓고 있다”며 “일단은 미국에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정부와 마찰을 빚고 싶지 않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전화는 이같은 내용이 6일자 가판에 보도된 뒤 걸려왔다는 점에서 당국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두 사람의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으나 이에 대해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정부는 미 의회 관계자들이 공식 외교경로를 통하지 않은 채 황씨를 면담하려는 데 대해 불쾌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으며, 황씨를 초청한 미 의회 관계자들이 강경 보수성향이라는 점도 의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