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전파사집 셋째 아들서 메이저리그 올스타까지.'
지난 94년 1월11일(이하 한국시간). 국내 야구팬들의 이목은 공주 출신의 한 야구선수에게 집중됐다. 박찬호(28ㆍLA 다저스). 당시 한양대에 재학중이던 21세의 젊은 박찬호는 120만달러란 거액을 받고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1973년 전파사를 하는 박제근씨와 정동순씨의 4남1녀중 셋째로 태어난 박찬호는 공주 중동초등학교 4학년때 육상으로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공주중학교에 올라간 뒤에는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고, 공주고 입학 후에는 내야수에서 투수로 전향.
고3 시절인 지난 91년. 국내에서는 '공만 빠른 그저 그런 투수'로 평가받던 박찬호는 미국 LA 롱비치대학서 열린 한-미-일 국제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하면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된다. 하이킥에서 뿜어져나오는 시속 150㎞ 후반의 직구에 약점이던 컨트롤까지 제 자리를 찾으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로 탈바꿈하게 된 것. 에이전트 스티브 김과 LA 다저스 테리 레이놀스 스카우트 부장과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 것도 그때였다.
한양대 입학후 150㎞대 후반의 광속구를 뿌리던 박찬호는 93년에는 버펄로 유니버시아드에서 맹활약하면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표적 1호'로 떠올랐다.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낯선 무대, 낯선 동료들과의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성실한 훈련과 꼬박꼬박 적는 일기를 통해 이겨냈다. 96년 4월7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담쟁이 덩굴로 유명한 리글리필드서 열린 시카고 커브스와의 경기서 박찬호는 에이스인 라몬 마르티네스가 부상하자 2회부터 '땜질용'으로 등판, 감격의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냈다. 역사에 남을만한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첫 승.
아버지 박제근씨는 지난 98년 '소리전파사'를 처분했다. 박찬호 역시 이제는 특급호텔의 최고급 객실에 묵으며 연봉 2000만달러를 바라보는 초특급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공주 순둥이'는 여전히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 스포츠조선 김남형 기자 st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