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학생들은 1번부터 시작하고, 여학생들은 21번부터예요?
지방도시의 한 남녀 공학 여자중학생들이 그건 남녀차별이라고 얼마 전 여성부에 개선을 요구했을 때, 많은 어른들은 솔직히 깜짝 놀랐다. 단순히 학급행정 편의를 위해 남녀를 구분하고 일련번호를 매겼을 뿐인데, 이것도 아이들 눈에는 ‘차별’로 보이는구나. 가나다 순으로 하면 앞번호에 있을 강씨·김씨 딸들이 최씨·한씨·홍씨 아들 뒷번호를 받고서 ‘황당’했을 걸, 어른들만 몰랐구나….
여성주간을 맞아 생각해본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지금 아주 작은 것부터 변하고 있다. 남녀차별이 별거냐, 남자 여자를 성에 따라 다르게 대접하는 거, 그게 차별이라고, 아주 작은 데서부터 바꾸어 나가자는 게 평등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그런 변화 요구를 중학생이, 갓 스물 넘은 신입 여사원이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다시 앞의 출석번호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그냥’ 생각하면 이럴 수도 있을 거다. 어차피 남녀 구별해서 번호를 매겨야 되는데 남자 1번 여자 1번부터 각각 시작하면 복잡하지 않으냐고. 그러나 여기 ‘도전’이 있다. 남녀 섞어서 번호를 매기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소속 학생을 굳이 남녀로 나눠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이것은 ‘허황한’ 소리가 아니다. 남녀 성별이 드러나는 관리 방법을 ‘불법’으로 규정한 곳이 세계엔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취업용 이력서에 성별이나 기·미혼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도 붙이지 못하게 되어있다.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을 막기 위한 장치다. 중학교 교실에서 5번 ‘김영수’가 남학생인지 여학생인지는 교사의 노력으로 알아야 할 일이지, 번호에 의해 자동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성차별을 바탕에 깐 ‘편의주의’인 것이다.
남녀공학이 크게 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남녀 차별’ 구조가 학교 현장에서 하나 둘 드러난다. 여학생들은 “여자 화장실을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남학생 수와 여학생 수가 같다고 변기 수를 같게 하면 그건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화장실 ‘체재’ 시간이 여자가 남자의 1.6배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여자용 변기가 남자용의 1.6배여야 ‘공평’한 게 된다.
헌법과 교육기본법 등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있고, 대학생 중 여학생 비율이 81년 29.7%에서 2000년 47.1%로 20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지만 교육 현장에서의 관행적·간접적 차별은 너무도 많다. 여성개발원이 전국의 95개 일반계 고등학교를 뽑아 조사했더니, 성별에 따라 제2외국어를 선택하게 한 곳이 42%나 됐다. 여학생은 부드러운(!) 프랑스어, 남학생은 딱딱한(!) 독일어나 중국어였다. 성차별로 힘든 것은 여학생만이 아니다. 남학생은 “강해야 한다”는 이유로 감정을 죽여야 하며, “맞아도 더 맞아야 한다”는 게 학생들 이야기다.
2010년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0위권에 드는 선진국이 되려면? ‘우먼 코리아’란 제목의 최신 매킨지 보고서는 “전반적인 산업구조를 지식산업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 중 전문직 일자리 120만개를 우수 인력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 시점에서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실태는 OECD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캐나다의 70년대보다 못한 수준이다. 여학생의 번호가 남학생의 뒷번호에서 시작하지 말게 해달라는 열네 살 여중생들의 문제 제기는 그래서 작지만 희망적이다. 더 많은 문제제기가 학교 현장에서 즐겁게 쏟아져 나오길!
(문화부 차장 sunnyp@chosun.com)